지명 대회 16시간을 남겨놓고 유 총재는 나를 추천했다. 총재의 지명 대회가 될 테니 수락 연설문을 미리 준비하라. 그러더니 저녁 때 연설문을 함께 검토하자. 다른 급한 의논도 있다. 집으로 와 달라고 했다. 저녁 유진산 씨 댁에서 지명 수락 연설문을 검토했다. 주문이 많았다. 평소에도 말을 길게 하는 분이지만 유별났다. 유 총재 의견을 반영하겠다. 대회장에서 검토해도 되니 일어서겠다. 대의원들도 좀 만나 봐야겠고 ….
그 무렵만 해도 교통 체증이라는 것이 없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노량진에서 차가 막혔다. 왜 그날 한강 인도교가 교통 체증에 걸린 것인지 그 이유를 모른다. 노량진에서 한강을 건너는데 40분 넘게 걸렸다고 기억된다. 시내에 나와서 11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좀 늦었지만 예정대로 대의원 숙소 순방에 나왔다. 첫번째 여관에 들렀다. 반은 취해서 자고 일부는 취했음에도 술판을 벌였고 또 일부는 화투놀이였다. 대회 당일 투표가 끝나 개표중일 때 내게 와서 2차 투표 준비를 해야겠다고 했다. 무효표가 많고 김대중 표도 예상보다 많아 과반수가 안 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과반수에서 20표 미달, 차점자와의 표차 40, 무효 78, 조금만 움직이면 된다고 했다. 대회전 1주간 나를 속인 사람들의 말과 표정이 선명하게 눈앞에 떠올랐다.2차 투표에 기대를 걸고 움직인다면 아직도 속은 것조차 모른다고 하겠지 생각을 했다.
"움직일 것 없다. 2차 투표에서는 네가 지는 것이다."
1970년의 지명 대회에서 겪었고, 있었던 일이다. 어차피 지게 되어 있는 선거라는 패배의식 그리고 장유유서라는 정당의 전통적 질서를 어지럽혔다고 나를 원망하는 마음들이 나를 올려놓고 흔드는 보복으로 나타난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나를 흔드는 이유 중에 내각제 개헌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는 것은 좀 더 시간이 흘러서야 알았다. 1970년의 지명 대회는 멋있는 대회로 국민들에게 깊은 인상도 남겼다. 나는 약속을 지켰다. 승자의 손을 들어 축하했고, 나에게 맡기는 일은 최선을 다해 도우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멋진 지명 대회는 선거전으로 연결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