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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각제 환상


내각제 환상


    다음 잘못 알려진 것은 대세를 잡고도 지나치게 낙관한 나머지 역전패당했다는 일반의 인식이다.

    그 해 지명 대회를 열게 하는 데 꼬박 열 달이 걸렸다. 내가 노력해 당헌에 규정한 날짜까지 무시하면서 세 차례나 연기했다. 그런데 그 10개월 보다 나은 후보를 찾은 것이 아니라 40대 기수론을 흠집냈다. 내일도 내다보지 않는 총재의 생각 깊지 않는 발언을 유감이라고 말한 것은 40대 중의 누가 후보가 될 때는 왜 생각지 않느냐는 뜻이었는데, 유 총재는 이런 나의 경고를 들은 척도 안했다. 왜 그랬을까?그때 당료의 대부분이 대통령 선거를 포기했었다. 쿠데타로 집권한 박 대통령이 무리하면서 3선 개헌을 밀어붙였는데 선거로 정권을 내놓을 리 있겠는가? 그나마 당내에는 강력한 후보도 없고 … 라는 의식들이었다.

    또 하나는 내각제 구상이다.

    박 대통령의 3기 임기 후반에 절충식 내각제 개헌을 하자, 박 대통령은 외교와 안보만 전담하고 다른 내정은 총리한테 맡기는 제도라면 박 대통령도 받아들일 것이다. 이것이 공화당 4인 체제와 신민당 주류파 원로간에 이루어진 내각제 환상이다. 이번에 수월하게 당선케 하자. 그렇게 해서 절충식 개헌을 할 수 있는 여 야 협조를 키워 가자고 그들은 밀약했었다. 이 작업은 실패했다. 열 달을 노력했지만 40대 기수론 이외의 길이 없어진 것이 실패를 말한다. 절충식 내각제라는 새로운 정치 질서로 가는 길을 방해한 자가 누구인가? 당사자들이 자문했을 때 대답은 자명하다. 40대 기수론을 선창한 김영삼이 표적 1호가 된 것이다.

    지명 대회가 끝난 저녁 유진산 총재가 술자리에서 40대 세 사람 중 후보가 되지 않아도 불복하지 않겠다고 서약한 두 사람은 모두 지명받지 못했고, 끝내 당수 말을 안 듣고 후보를 하겠다던 사람이 지명되어 제명 후유증을 없앴으니 당의 단결된 모습을 보인 멋있는 조정이 아니냐고 했다. 유진산 총재 후보 추천의 배경을 압축해 준 얘기다. 유 총재와 당 중진들이 총재의 후보 추천권을 달라고 했을 때 나는 그런 것이 어디 있느냐고 거절했다. 그러나 논리 정연했고 집요했다. 당신들은 유진산 총재는 안 되고 당신네들 셋 중에 후보가 나오면 셋이 하나가 되기로 하지 않았나. 유 총재가 다른 사람을 추천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셋 중 한 사람을 추천한다는 것이고 자동적으로 당신네가 안된다는 유 총재는 안 나오는 것이 아닌가? 당신네 세 사람의 약속이 거짓이 아니라면 유 총재 제안을 거부할 이유가 무엇인가.

    지명전 직전 나는 자금도 바닥나고 맨손이고 오랜 기간 같은 파벌이라 할 구파 본류 진산 참모진이 나를 성토하는 등 불리한 점도 있었지만 조절은 순조롭게 확대되어 나갔다. 상부는 무슨 생각을 하든 일선 당무 대의원들에게는 당선 가능성이 제1의 기준이었다. 진산계 조직은 내게 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