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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지명전의 바른 이해 필요


70년 지명전의 바른 이해 필요


    나에 대해 흠잡고 있을 때 1970년 지명전 역전패를 자료로 삼을 때가 종종 있다. 나나 김대중 씨를 비교하는 데도 이 지명대회를 끌어다댄다. 김대중 씨는 조직적이고 치밀한데 김영삼 씨는 비조직적이고 계산할 줄 모른다. 그래서 [바람의 정치인]이니, [감(感)의 정치]니 한다. 1970년의 지명전은 잘못 알려져 있는 것이 많다. 지명전 당시 숨겨졌던 내면이나 막후의 이야기도 그후에 알려질 만큼 알려졌는데도 첫번째의 인상이 강렬했기 때문에 그것이 그대로 굳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하면서도 나로선 불만스런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잘못 알려졌는데도 누구도 고치려 안하는 것이 '40대 기수론'이다.

    40대 기수론은 그때 신문이 붙인 이름이다. 처음 내가 지명전에 나가겠다면서 후보가 40대라야 한다는 말을 한 일도 없고 그런 생각도 해 보지 않았다. 당시 야당에는 50대나 60대의 중진들이 건재해 있었다. 그들은 한학도 알고 서양학문도 해서 지식과 덕망, 인격과 자질을 갖추고 있었다. 그분들은 당내와 출신 지역에는 기반이 있어 당 간부를 하고 국회의원에 당선하는데, 전국적인 기반이 없었다.

    5.16이라는 단절이 웬일인지 몰라도 그때 형편이 그랬다. 그런데 당에는 나이가 기준이 되는 서열이 있었다. 장유유서(長幼有序)란 질서가 엄격했다. 내가 후보로 나선다는 것은 이 질서를 깨는 행동이라고 했다. 선배 중진들의 모함과 박해가 보통이 아니었다. 나이는 나보다 많지만 정치 출발이나 당직 등 초기 서열은 나와 같아 무관한 사이였고 그때는 당 서열에서 내게 뒤쳐진 이민우 씨와 같은 이도 펄펄 뛰며 반대한 분이다. 분위기가 그랬다. 그래서 나와 나이가 비슷한 김대중 이철승 씨한테 우리함께 서열을 돌파해 보자, 지명전에 나서겠다고 선언하는 것도 나를 도와주는 것이고 그런 의사가 없으면 나를 도와 달라고 청했다.국민 여론이 내 편이 되고 분위기가 달라지니까 두 사람도 경쟁 선언을 했다. 그렇게 되니까 공개적으로 선언한 세 사람이 모두 40대였고, 신문들이 줄여 말하기 쉽게 40대 기수론이라고 이름붙였다.

    그런 내막을 뻔히 알면서 나의 주장을 40대 기수론으로 몰아 때린 이가 유진산 총재다.

    "대통령 후보가 40대라야 한다는 얘기는 구상유취한 노릇이다.

     대통령 후보를 세대 문제와 결부시키려 한다면 그것은 정치적 미성년자의 생각으로서 묵과할 수 없다."

    그때 내가 즉시 반발을 했다.

    "나는 대통령 후보가 40대라야 한다고 말한 일이 없다.

     과거에 50대 60대가 후보에 서듯이 40대도 나설 수 있고 내게도 경쟁할 수 있는 공정한 기회를 달라는 것뿐이다."

    우리 셋은 나중에 셋이 단일화를 못 하고 셋 모두 경쟁 투표에 나가면 다른 경쟁자가 있을 때는 1차 투표의 1위 득표자에 표를 모으고, 우리 셋만일 때는 1차 투표의 1위 득표자를 만장 일치의 후보로 추대한다는 등 세 사람이 약속을 해서 결과적으로 40대 기수론처럼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노장들이 우리 셋을 어떻게든 밀쳐버리고 당내나 당외 노장 중의 후보를 찾느라 당을 9개월 이상 방황하게 했기 때문에 여기에 대응한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