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항만이 봉쇄되었기 때문에 여객선을 탈 수 없어 부랴부랴 자가어선을 타고 부산으로 달려 서울행 열차에 몸을 실은 것은 그 이튿날이었다. 정말 괴롭고 지루했던 여로였다. 이제 그렇듯 지루하고 괴로웠던 암흑의 계절이 지나고 민정이 들어선 지 2년이 흘러 5.16 네 돌을 맞게 되니 나는 그 날의 기억을 되새기게 된다. 그러나 나는 5.16을 기념할 수가 없다. 기억할 뿐이다. 5.16은 축하할 만한 기념일이 될 수 없다는 보다 더 강한 의미의 치일(恥日)로서 3천만의 머리 속에 기억해두어야 한다. 다시는 범하지 말아야 할 '우거(愚擧)의 날'로서 말이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계승하고 4.19 의거와 5.16 혁명의 이념에 입각하여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건설함에 있다'고 5.16 세력은 제3공화국 헌법 전문에다 이렇게 기록했다. 그야말로 숭고한 3.1정신과 순수한 4.19 정신에다 5.16을 혁명정신으로 명명하여 접목시켜 놓았다. 그것도 한술 더 떠서 4.19는 의거라 하고 5.16은 혁명정신이라 도색했다. 이 나라 민족사에 길이 남을 3.1독립과 4.19 혁명정신을 5.16과 동일시할 수 없다. 3.1정신 및 4.19정신과는 정반대의 현상이 5.16군사쿠데타인 것이다. 5.16은 자유당 정권은 부패하고 장면 민주당 정권은 무능했다고 규탄함으로써 그들의 우거를 정당화하려고 선전했지만 5.16 정신은 그들 스스로가 부정하고 말았었다.
집권 8개월밖에 안된 민주당 정권을 무능정권이라고 몰아친 그들이 2년 7개월의 군정을 통해 얼마나 유능했던가는 이미 심판이 나버린 사실이지만 그들이 민주당 정권을 무능정권으로 판단하고 그 정권을 무너뜨리기로 모의한 것은 민주당 정권이 수립된 지 한 달도 못 된 시점이었다는 데는 실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박정희 장군 이하가 1960년 9월 10일 서울 시내 충무가에 집합하여 무력 쿠데타로서 민주당 정권을 전복할 것을 건의하고 아울러 활동방침과 부서를 결정하였다'는 것이 바로 군사정권 자신이 발간한 '한국혁명재판사'와 한국군사혁명사'에 기록돼 있는 것이다.
여기에 나타난 9월 15일은 7.29 선거를 거쳐 장면 정부가 수립(8월 23일)된 지 불과 18일 만의 일이었다.이 사실(史實)은 5.16이 혁명이 아니라 계획된 정권탈취행동에 불과했다는 것을 변명할 여지가 없이 말해준 것이다. 5.16정신이나 명분은 그들 스스로 발간한 문헌에 의하여 간접적으로 완전히 부정됐다. 5.16 군사쿠데타의 명분은 허구였으며 그들이 내세운 이념이나 공약도 모두 그들의 정권욕을 국민 앞에 감추려는 위장에 불과했다. 5.16의 가치는 그러한 정신과 동기에서뿐 아니라 그 정치적 실체면에서조차 찾을 여지가 없다. 그러므로 나는 언젠가 헌법 전문에서 5.16 쿠데타를 3.1 정신과 4.19 정신과 동질적으로 기록한 대목을 삭제하는 헌법 개정이 있어야 할 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