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공화당정부 말기에 동서냉전에 있어 수세로만 몰리고 국제수지의 역조현상에 직면했을 때 이런 상태로부터 벗어나 미소냉전에 있어 주도권을 도로 찾고, 새로이 번영코스로 접어들게 한 데는 역시 케네디라는 젊은 지도자의 '용기와 총명의 힘'이 컸던 것이다. 한편 영국의 보수당정권이 무너지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침체된 정치상황에 빠졌다는 것은 처칠이 은퇴한 후 이렇다 할 지도자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또 하나 필리핀에서 막사이사이 대통령이 사망하자 막사이사이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버린 사실을 지적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지도자의 힘이 그 나라의 전진과 후퇴를 좌우하는 것이다. 그만큼 집권자의 책임은 중요한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존슨 대통령은 하루 일과 중 가장 많은 시간을 국회의원과 언론인과의 접촉에 할애하고 있었다. 존슨 대통령은 비공식 스케줄로서 여야 의원이나 중요 언론인들을 회식에 초대하는 일이 많은 것이다. 그 자리를 통해 대통령이 직접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을 설득시키고 이해를 구하는 것이다. 오늘날과 같이 어려운 시기에 어떤 경로를 밟았든지 간에 이 나라 정권을 쥐고 있는 박정희 대통령은 자기가 처해 있는 위치의 책임을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그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집권자로서의 올바른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편협하고 봉쇄적인 자세에서 이해와 설득을 통한 공명정대한 정치의 자세로 전환해야 하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어떤 문제가 났을 때는 꼭 이런 방법으로 국회의원들과 언론인들의 의견을 타진하여 이해를 시키고 설득시킨 후 정책으로서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여기에서 야당과 언론계의 협조의 길이 트이는 것이다. 나는 미국에 있을 동안 중요한 신문에서 사설로 어떤 문제를 다룬 후에 그것이 정부의 정책으로 결정되어 나오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나는 이러한 '이해와 설득의 정치'를 박정희 대통령과 그를 둘러싼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박정희 대통령이 청와대에 앉아서 공화당이나 그 주변의 여권인사들과 저녁에 소주를 마셨다는 신문 가십을 더러 보았지만 야당인사를 만났다든지 신문사의 논설위원이나 기자들과 접촉하였다는 말을 별로 듣지 못했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야당의 영수가 만나자고 해도 만나주기는커녕 도리어 모든 책임을 일부 야당이나 일부 언론인이나 일부 학생에게만 덮어씌우고 심지어는 언론의 자유를 법으로써 억제하려고 이른바 언론법 파동을 촉발하지 않았던가.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그러나 내일이면 늦다. 박정희 대통령은 폭넓은 집권자의 자세로 보다 많은 사람을 만나 아이디어를 구하고 자기의 아이디어에 대해 설득하고 이해를 구할 줄 아는 겸허한 자세를 취해야 한다. 자주 만나 이해를 구할 때 이해하지 않을 야당이 어디에 있으며 언론인이 어디에 있겠는가. 국민에 군림하려는 자세가 아니라 설득과 이해를 구하려는 성실한 태도가 중요한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그의 '비공개정치', '비밀정치', '정보정치', '독주정치'가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범했는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군정과 공화당 정권 하에서의 한일회담을 예로 들자. 국민감정을 도외시한, 말하자면 국민에 대한 설득과 이해 없는 비밀, 독주정치가 결국엔 학생데모사태까지 유발하지 않았던가? 우리는 지금 중대한 시점에 놓여 있다는 것을 박정희 대통령은 모를 리 없다. 최근의 국제정세의 변화는 무엇인가 우리에게 불안과 초조감을 주고 있다. 국민은 방향을 잃고 있다. 여기서 집권자는 국민에게 용기와 의욕을 북돋아주고 미래의 '비전', 다시 말해서 국민에게 새로운 '꿈'을 불어넣어 국민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줘야 할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자세를 바로 세우고 국민이 단결하여 나라의 발전에 스스로 이바지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 자신도 말했듯이 머지 않아 현실문제로 다가올 남북통일선거에 대비해서 우리의 경제적 실력을 향상시켜 승공할 수 있는 위치로 끌어올려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그것을 구출하는 사람은 대중이 아니라 극소수의 지도자이며 그중에도 그것을 꼭 해야 할 책임을 가진 사람이 집권자라는 것을 명심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