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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립하면서 단결하는 원리


대립하면서 단결하는 원리


    나는 이번 여행에서 한 가지 '원리'를 터득했다.

    '대립하면서도 결속할 줄 아는 민족만이 번영한다'는 것이다. 이 원리만 충실히 지켜나가면 전체주의의 공포와 고통 없이 번영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보았다. 한 사회, 한 국가가 번영하고 발전하려면 여러 가지 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경제가 안정되어야 하고 사회질서가 바로잡혀야 하며 도덕률이 확립되고 정치가 안정되어야 하는 등.... 이와 같이 각 분야에 걸친 여러 여건의 구비가 필요하지만 내가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인간사회의 모든 부면에 걸쳐 이를 이끌어 가는 기본적인 룰에 관한 문제이다.

    대립하면서도 단결할 줄 아는 사회운영방식이 확립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정치분야에서 이것 없이는 정치의 안정을 기할 수 없다. 미국, 영국은 논외로 하고라도 전후 부흥국인 독일, 일본, 그리고 프랑스를 보라. 대립하면서도 단합함으로써 그들은 오늘의 부흥을 가져오지 않았는가? 독일이라고 일당전제의 나라가 아니며, 일본이라고 강력한 야당의 도전이 없는 것이 아니며, 드골은 얼마나 무서운 반대파의 공격을 받았던가? 라인강의 기적을 이룩한 전후 독일의 메시아 기독교민주당도 사회민주당의 강력한 도전을 받았고 지금은 3개 정파로서 연립내각을 형성하고도 별 말썽없이 정권을 이끌고 가고 있다. 신무(神武) 이래의 호경기 속에서 아시아 제1의 고소득국가로 일본을 재기시킨 일본의 자유민주당도 사회당의 격렬한 '선전포고'를 받아왔다. 알제리아 문제 해결 때문에 직접 그 부하들로부터 폭탄세례를 받아온 드골의 경우도 있다. 이들은 그렇게 치열하게 대립하면서도 조국의 이익을 위해선 언제나 결속하여 왔다. 이들 여러 나라의 정치세력은 반대당과의 대결도 대결이거니와 자기 당 내부에도 적지 않은 파벌과 대립을 안고 있다. 특히 일본의 자민당의 경우는 8개사단이나 안고 있으면서도 '대립하면서 단합'할 줄 안다. 극히 최근에 (池田) 후계자로 사토(佐藤) 수상을 뽑기까지 자민당 내의 각파간의 대립은 심각한 바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마지막에 가서는 의원총회를 통해 만장일치로 사토(佐藤) 씨를 수상으로 뽑아 결속의 힘을 보인 것이다.

    이 놀라운 '결속의 힘'으로 그들은 줄곧 국민으로부터 '집권의 신임'을 받을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이룩한 정치적 안정을 통해서 오늘의 번영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이다. 비록 서독과 일본이 공업잠재력에 있어서 뛰어난 바 있었다 치더라도 '혁명', '쿠데타' 등등의 정치적 불안을 면치 못하였다면 도저히 오늘과 같은 재건은 불가능했을 것이 명백하다. 한편 드골 집권 전의 프랑스와 드골 집권 후의 프랑스에서도 이러한 사실을 역력히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사례는 비단 선진국가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4억 5천만 중 4억의 국민이 1일 1식밖에 못할 정도로 처참한 빈곤 속에서 허덕이는 인도에 있어서도 소위 국민의회파를 주축으로 하는 결속의 힘이 3차 5개년 계획까지 집행할 수 있도록 하였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만일 국민회의파의 결속의 힘이 없었던들 인도는 벌써 그 여건으로 보아 공산화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우리의 짧은 해방 후의 역사를 회상해본다. 만일 임정계의 세 영수인 이승만 박사와 김구 선생 및 김규식 박사가 대립하면서도 한울타리 안에서 결속하고 국내 민족주의 세력이 이들과 같이 단합했던들 오늘과 같은 분열과 파쟁의 악순환을 되풀이하지는 않았으리라. 오늘의 우리의 비극은 여기에서부터 싹튼 것이다. 아집에 사로잡혀 현실을 떠난 명분과 주의주장으로 타협과 조정을 하지 못함으로써 마침내 민족적 분열의 씨를 뿌렸던 것이다. 결속을 이루지 못하는 끝없는 대립은 백해무익하여 그 결과는 분열과 부정과 마침내는 파멸을 가져올 뿐이다. 대립은 최선의 경쟁으로 보다 나은 발전에의 계기가 될 것이며, 두 주의주장 사이의 가교는 토론과 다수결 원칙이 그 구실을 하게 될 것이 아닌가. 소수의견을 존중하는 다수와 다수의견에 복종하는 소수, 이 두 원리를 통하여 우리는 최대공약수 즉 결속의 계기를 찾아내야 할 것이다. 단합을 부르짖는 사람은 많았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단합할 수 있는가? 단합을 위해서 자기 스스로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만족스러운 답변을 제시하지 못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할까는 생각하지 않고 남에게 무엇을 하라는 요구를 앞세우는 것이 우리 나라 사람들, 특히 정치인들의 생태인지도 모른다. 상대편의 복종만을 강요하는 그 결과는 타협과 단합이 없는 대립과 분열을 가져올 것이 뻔하다.

    얼마 못가서 또 다시 정권을 부정하는 데모가 악화되어 계엄령을 펴지 않으면 안 된 정국의 불안은 변명할 길이 없었다. 특히 한국에 대한 미국인들의 인상을 나쁘게 한 치명적인 이유는 군사쿠데타였다. 그것은 한국에 대한 평가를 크게 절하시켰다. 내가 여기서 5.16 쿠데타의 가치를 새삼스레 평가하려는 것은 아니다. 쿠데타를 일으킨 사람들도 말했듯이 그 가치평가는 역사에 맡긴다손 치더라도 5.16이 국외에 미친 여러 가지 영향 중에서도 이점에 대해서는 각별히 깊은 책임을 그들이 느껴야 한다는 것을 지적해두려는 것이다. 이승만 박사의 10년 독재정권을 학생데모로 넘어뜨린 것도 본질적으로 좋은 인상을 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정권욕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학생혁명이라는 데 어느 정도 이해는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민주적인 장면 정권을 1년 예산집행도 해보기 전에 총칼의 힘으로 도괴시킨 군사쿠데타는 우방에게 큰 충격을 주었으며 그만큼 한국에 대한 국제적 평가기준을 깎아내린 결과가 된 것이 분명했다.

    동기야 어쨌든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책임자인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은 무엇보다도 이 점을 명심하고 단 한 번이라도 정권의 평화적 교체의 실례를 세계에 보여 잃어버린 국위를 회복하기를 부탁하는 것이다. 비민주적이요 비합법적 수단으로 정권을 잡은 그들이 정치를 잘했다면 또 문제는 다르겠지만 무정견, 무원칙한 실정으로 온갖 부정과 부패를 가져왔으며 국민생활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경제성장을 오히려 위축시켰다. 그뿐만이 아니라 천하에 밝힌 혁명공약마저도 헌신짝같이 집어던지고 2.27선서에 3.16성명에, 4.8성명에 이르기까지 번의에 번의를 거듭함으로써 나라의 체면을 크게 손상시켰던 것이 아닌가?

    오늘날의 국제사회는 고립해서 살 수 없다. 국제사회에서 신용을 잃고 위신을 잃는다는 것은 중대한 문제인 것이다. 국제사회에서의 한 국가에 대한 평가기준은 그 나라의 정치능력과 경제실력에 둔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우리의 가장 가까운 우방이며 우리 나라의 방위와 발전을 위해 많은 희생을 지불한 미국에서 한국이 자꾸만 망각되어가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물론 미국무성이나 의회관계자들은 꾸준히 한국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전문적 연구와 분석을 거듭하고 있지만 직접 이해관계 없는 일반시민들 사이에는 '코리아'라는 나라의 이름을 망각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것은 우리가 그들이 기대했던 대로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지.....

    그들이 우리에게 기대했던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자유민주주의적 대의정치의 기틀을 굳게 하고 그 기반 위에서 경제적 번영을 누림으로써 자유민주주의가 공산주의보다 잘산다는 우월의 실증을 보이는 것일 것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시급한 문제는 정치적으로 안정을 이룩하고 정권의 평화적 교체의 전통을 수립함으로써 정치적 후진성을 탈피하는 것이다. 고질적인 정치불안 속에서는 경제적 안정을 기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대의정치의 기본질서를 부정해서는 안되겠다. 다시 한 번 이 질서를 무너뜨린다면 우리는 그야말로 세계의 정치적 고아가 될 것이라는 것을 모두가 인식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