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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사는 요인 - [부정의 철학]


못사는 요인 - [부정의 철학]


    우리는 왜 잘살지 못하는가? 일제로부터 36년간 착취를 당해서인가? 6.25 공산침략을 당해서인가? 물론 그것이 치명적인 이유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면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인 서독과 일본이 오늘날 우리보다 못살아야 할 것이 아닌가? 그렇게도 엄청난 인적 피해와 물적 파괴를 당한 서독과 일본이 오늘날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강국가로 등장하지 않았는가? 서독은 연간 수출고가 120억으로 세계 제2위를 차지하고 있는가 하면, 일본은 60억으로 6위를 달리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64년도 수출목표 1억 2천만 달러를 세워놓고 턱걸이를 하고 있지 않은가.

    오늘의 서독과 일본의 부흥이 기적이 아니오 한국의 빈곤이 우연이 아니다. 그들은 전후 그 폐허 위에서 히틀러나 도오조를 원망만 하고 실의와 패배의식에만 사로잡혀 있지 않았다. 불굴의 인내와 피나는 노력과 용기로써 단결하여 일어섰던 것이다. 독일국민들의 우수한 두뇌와 강렬한 의지력, 거기에 근면한 생활 자세로써 라인강변의 기적을 이룬 것이다.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나는 우리가 못사는 이유는 결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들 국민 개개인의 마음 속에 있다는 데 귀착시킬 수밖에 없다. 우리는 해방 후 19년 동안, 그리고 휴전 후 13년 동안 무엇을 했는가? 휴전 후 그 많은 미국의 원조를 받고도 여태까지 경제적 자립의 토대조차 마련하지 못했고 18년 동안 평화적 정권교체가 가능한 기초적인 민주대의정치의 질서를 세워놓지 못하지 않았는가? 무엇 때문이었을까? 미국의 원조방식이 나빠서인가? 정치경험이 부족해서인가?

    여러 가지 원인을 들 수 있겠고 불리한 여건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가장 원천적인 이유는 우리 국민들이 일반적으로 지닌 공통된 성격, 다시 말하면 이른바 국민성의 결함에 있다는 것을 새삼스레 말하고 싶은 것이다. 우리의 분열경향의 성격은 일찍이 이조 사색당쟁이 역사적으로 말해주고 있거니와 지난 19년 동안 우리들이 밟아온 발자취는 분열과 갈등으로 점철됐으며 부정의 논리에 이끌려나왔던 것이다. 우리들은 긍정하기보다 부정하기를 좋아했다. 짧은 정치사를 보더라도 우리는 너무 부정의 철학에 젖어 살았다. 이승만(李承晩) 박사는 자기가 아니면 안된다는 독선의식에 사로잡혀 많은 민족진영의 지도자를 부정했다. 그리하여 무리한 집권연장을 거듭하다가 자기 스스로가 학생데모 앞에 부정당하고 말았다. 4.19 학생혁명으로 가장 민주적 절차를 밟아 등장한 장면 민주당정권에 대해서 우리 국민은 어떻게 했는가? 우리는 그것마저도 긍정하기보다 부정만을 앞세웠다. 만성적인 부정의 데모로 장면 정권을 비판했던 것 아닌가? 드디어는 정권수립 9개월만에 군사쿠데타에 의하여 그 정권은 넘어지고 말았다. 가장 민주적인 질서를 밀어붙이고 그 위에 군사혁명정부를 세운 군부세력은 구정치세력을 '구악(舊惡)'이란 레테르를 붙여 일괄 부정했으며 낡은 세대를 또한 함께 부정하고 소위 '세대교체'란 구실 밑에서 국민을 분열시켰다. 그러나 그들 스스로가 또 다시 국민들의 냉혹한 부정의 대상이 되고 말았었다. 그들에 대한 부정은 드디어 3.24 데모에서 6.3데모로 발전, 충격적인 계엄사태까지 가고 말았던 것이다. 이러한 부정의 유산은 고질적인 정치불안을 연속시켰고 그러한 정치불안은 또 경제불안을 수반하여 오늘날까지 우리는 빈곤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이제 이 '부정의 철학'을 '긍정의 철학'으로 전환시켜야겠다. '안티테제'에 그치지 않고 '진테제'를 제시하는 긍정적인 발전의 철학이 확립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원리는 정당정치의 구현을 지향하는 우리 사회에서 개인뿐 아니라 여야간의 정치에도 그대로 적용되어야 할 것으로 안다. 배타적인 정권연장--독점욕에 급급하여 평화적 정권교체의 길을 막고 야당에 대한 탄압과 그 주장의 묵살을 능사로 아는 여당의 자세나 무조건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는 야당의 대여(對與) 비판태도는 보다 대국적 견지에서 이타사지(易他思之)하는 자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나만이 애국자다', '내가 아니고서는 나라를 구할 수 없다'는 식의 유아독존적 사고방식을 버리고 서로 상대편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의사를 존중해주는 '긍정의 바탕'위에서 서로를 돕는 협조정신의 진작이 긴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