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루시초프는 체코슬로바키아 방문 중 프라하에서 소련, 체코, 핀란드, 헝가리, 불가리아 등 소련권 5개국 외상회담을 비공식으로 열고 그의 서독에 대한 새로운 외교노선의 조정을 시도하였는데 여기에 동독이 참석하지 않은 것은 흐루시초프의 서독방문에 불만을 가졌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폴란드와 헝가리는 동독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부다페스트와 바르샤바에 서독통상대표부의 설치를 인정했으며 불가리아도 동독의 항의를 물리치고 서독과 장기통상협정을 맺었다. 흐루시초프는 북경의 인민일보가 '동독을 서독정권에 팔아버리려 한다'고 비난했고, 동독이 내심으로 반대하는 서독 방문을 왜 하려 했을까? 그것은 아마도 오늘의 서독의 부강이 유럽에 있어서 무시할 수 없는 존재로 되어가고 있다는 증거로 해석되어야 할 것 같다. 내가 직후 여러번 들은 이야기지만 독일 주변 국가들은 독일이 통일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반조각인 서독이 유럽의 여러 전승국을 앞질러 경제적으로 번영하고 있기 때문에 독일이 통일되는 날이면 어떤 사태가 올까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흐루시초프의 서독접근정책이 노린 것은 무엇이었을까? 첫째 생각할 것은 서독의 핵무장을 막으려는 것이었고, 둘째로는 서독과 동독간의 무역관계를 보다 밀접하게 하자는 것이며, 셋째는 중공과 연결하는 드골의 프랑스를 고립시키려는 것이었을 것이다.
서독은 이제 소련까지 머리를 숙일 정도로 부강해졌다. 이와 같은 실력을 가진 서부독일 사람들은 통일문제에 자신이 차 있다. 초조해하거나 서둘 필요가 없는 것이다. 언제 어떤 방법으로 통일선거를 하든지 동독에 이긴다는 것은 기정사실화 해버렸다. 내가 동서베를린 경계선에 있는 전망대에서 양쪽 시가를 내려다보았을 때 벌써 동서독의 승부는 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브란덴부르크의 장벽 너머로 보이는 동베를린과 이쪽의 서베를린의 풍경이 그것을 말해주었다. 동부 베를린에는 아직도 전쟁 때 부서진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을 만큼 복구되지 못한 데 반해 서베를린은 완전히 복구되어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동베를린은 '죽은 도시'였고 서베를린은 활기있게 '살아 있는' 도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