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통치하에 있던 한국이 미국과 관계를 맺게 된 시발점은 한국의 독립을 허용하기로 한 카이로선언에서 찾을 수 있다. 멀리 소급하면 이조 말기까지 가겠지만……. 1943년 카이로에서 루즈벨트 당시 미대통령과 처칠 당시 영국수상, 그리고 장개석 중화민국 총통은 '한국은 적당한 절차를 거쳐 자유와 독립을 허용해야 한다'고 카이로 선언에 명백히 했으며, 그후 포츠담 회담에서 스탈린의 동의를 얻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때로부터 한국동란이 발발하던 1950년까지 미국시민들은 한국이란 나라를 잘 알지 못했다. 그런데 1950년 코리아라는 이름은 미국 가정마다에서 부단한 화제가 되었다. 아시아에서 발발한 공산주의자의 노골적인 무력침공은 미국을 놀라게 했던 것이다. 38선을 넘어온 공산군은 소련의 지원을 받으면서 진격을 했던 것이다. 여기에서 많은 미국인들은 잠에서 깨어나 호전적인 공산주의가 지금 강대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국은 병력의 징집과 군수공장의 정비 및 경제통제를 부활하고 많은 미군을 한국전에 투입하여 피흘림으로써 한국은 세계에 있어서 미국의 새로운 입장을 상징하는 심벌처럼 된 것이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괴뢰군의 남침이 시작되자 미국은 즉각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소집을 요청하고 유엔 경찰군을 한국에 파견하자는 결의안을 통과시켜(그때 소련은 다른 문제로 유엔 안보이사회를 보이콧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방해하지 못했었다) 역사상 최초로 유엔경찰권을 발동시켰던 것이다. 미국은 유엔 16개국 군대로 구성된 유엔군의 깃발 아래 한국에 진주, 소련탱크로 중무장한 북한인민군을 낙동강전선에서 저지, 반격에 성공함으로써 위기의 한국을 구출했던 일은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