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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과 협력의 새 력사를 향해

우정과 협력의 새 력사를 향해

     존경하는 도이(土井たか子) 중의원 의장, 하라 분베에(原文兵衛) 참의원 의장, 그리고 양원 의원 여러분!

     나는 일본 민주주의의 상징인 유서깊은 이 의사당의 연단에 섰습니다. 평생을 의회민주주의자로 살아온 나로서는 특별한 감회를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먼저 이 자리를 빌어, 한국 국민이 일본 국민에게 보내는 따뜻한 우정의 인사를 전합니다. 그리고 나에게 이렇게 뜻깊은 자리를 마련해 주신 데 대하여, 사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아울러 일본의 정치개혁을 추진해 가고 있는 여러분에게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친애하는 의원 여러분!

     지금부터 100년전인 1894년, 한반도에서 일본과 중국간에 전쟁이 있었습니다. 이 청·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마침내 한반도를 유린했습니다. 1945년 한국은 해방되었지만, 남북으로 분단되었습니다. 그리고 동족상잔의 전쟁을 겪었습니다. 한국은 지금도 지구상의 마지막 분단국가로서 민족적 아픔을 겪고 있습니다. 이처럼 지난 100년동안, 한·일 두 나라는 우호와 협력보다는 상쟁과 갈등이 더 많은 역사 속에서 살아 왔습니다. 나와 우리 국민은 한 세기에 걸친 이러한 상쟁과 갈등의 역사를 마무리하고, 진정한 우정과 협력의 새로운 역사를 열어나갈 것을 여러분과 일본 국민에게 제의합니다.

     그동안 일본 국민은 빛나는 국가발전을 이룩했습니다. 일본 국민의 근면성과 단합정신, 그리고 훌륭한 지도력이 오늘의 일본을 건설했다고 믿습니다. 나는 민주화 투쟁의 어려운 시기에 일본의 각계각층으로부터 많은 성원과 격려를 받았습니다.

     나는 일본 민주주의의 착실한 진전으로부터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시아는 민주주의가 뿌리내릴 토양이 못된다는 주장을 일축할 수 있었습니다. 민주주의 하에서 고도성장을 이룩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했습니다. 시장경제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에서도 한국과 일본은 긴밀한 유대가 형성되어 왔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1년동안 한국은 모든 분야에서 과감한 변화와 개혁을 추진해 왔습니다. 특히, 정치개혁과 부정부패 추방에 대한 확고한 의지는 흔들린 적이 없습니다. 재산의 등록과 공개로 부패한 공직자와 정치인은 설 땅을 잃게 되었습니다. 금융실명제 실시로 정경유착의 고리가 끊어졌습니다. 선거혁명, 정치혁명을 위한 정치개혁 립법도 이루어졌습니다. 한국 민주주의는 이제 성숙단계에 진입하게 되었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정치개혁은 아시아를「개혁의 시대」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호소카와 총리와 나는 일본과 한국에서 각기 이룩하고 있는 개혁의 성과에 대해, 서로 축하해 주는 아름다운 전통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새 시대의 소명에 따라 개혁의 대로에 나선 여러분들에 대해 나는 이 기회에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의원 여러분, 그리고 일본 국민 여러분! 세계는 지금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세계사의 진운은 불신과 대결로부터 화해와 협력의 방향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지구는 더욱 좁아져, 그야말로 지구촌이 되고 있습니다. 국경의 문턱은 낮아지고, 국가간, 지역간 협력이 증진되고 있습니다. 21세기는 태평양의 세기가 될 것이라는 토인비의 예언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국인과 일본인은 이제 새로운 꿈을 공유해야 합니다. 새로운 한·일관계, 새로운 아시아·태평양, 그리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꿈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저 넓은 태평양을 포용할 수 있고, 20억 아시아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높고 넓은 비전을 공유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꿈을 구현하기 위한 새로운 자세와 협력이 요청되고 있습니다. 현대일본의 저명한 소설가 무샤코지 사네아쯔(武者小路失篤)는 커다란 흰 접시위에 토마토와 가지를 그렸습니다. 그리고 "나는 나, 너는 너, 그러나 사이좋게"라고 썼습니다. 우리는 이런 아름다운 그림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각기 주체성과 다양성을 유지하면서, 공존공영의 정신으로 더 큰 공동체를 만들어 가야 할 때입니다. 그것은 평화와 번영의 아·태 시대를 열어 나가는 시발점이 될 것입니다.

     의원 여러분!

     이제 한·일 양국 국민은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야 합니다. 과거의 앙금은 말끔히 씻어내야 합니다. 한국 국민은 밝은 미래를 바라보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입니다. 일본 국민에게도 새로운 한·일관계, 새로운 아·태시대를 열기 위해, 역사의 진실을 직시하고 역사의 교훈을 살려나가는 용기가 요청되고 있습니다. 감정적 앙금이나 민족적 편견이 성숙한 동반자관계를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재일 한국인과 일본인간의 우호친선 증진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은 오랫동안 이웃사촌이었습니다. 이처럼 가까운 두 나라간에 진정한 신뢰관계가 구축되지 못한다면, 다른 나라의 신뢰를 얻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제 두 나라는 새로운 자세, 새로운 비전으로 새로운 협력관계를 구축해 나가야 합니다. 냉전종식에 따른 새로운 국제환경은 그러한 협력을 절실히 요구하고 있습니다. 특히 양국간의 상호보완적 경제협력은 새로운 시대적 요청이 되고 있습니다. 정치논리에 의한 협력이 아니라, 경제논리에 따른 협력체제를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의원 여러분!

     양국은 이러한 새로운 신뢰협력의 바탕 위에서, 지역내 평화와 번영의 장애요소를 제거하는 데 함께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귀국이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 보여준 협력에 대해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한국정부는 한반도 비핵선언이 실질적으로 이행되어야 한다는 확고한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이러한 입장에 따라 한국 정부는 그동안 북한 핵문제에 대해 인내심을 가지고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을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그러나 최근 북한은 약속을 어기고 IAEA 사찰에 성실한 자세를 보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급기야는 남북대화마저 일방적으로 중단했습니다. 그로 인해 북한이 핵개발에 대한 국제적 의혹을 증폭시킨 것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일 양국 국민은 전쟁의 쓰라림을 뼈저리게 체험하였습니다. 일본은 세계 최초의 핵무기 피해국입니다. 한국은 동족상잔의 이념전쟁을 처음으로 겪은 나라입니다. 이 지역 전체의 항구적 평화를 구축하기 위해 한국과 일본이 앞장서야 합니다.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 일본을 비롯한 역내 국가들이 더욱 협력해야 하겠습니다.

     또한 아·태 지역의 대량 살상무기 확산방지와 군비통제를 위해서도 함께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이 지역의 긴장완화와 공동안보를 위한 다자간 협력도 시작해야 할 때입니다. 한·일 양국은 또한, 북한의 개방·개혁과 남북한 평화통일을 위해서도 서로 협력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한반도 통일이야말로 이 지역의 긴장완화는 물론, 교류와 협력을 가속화시킬 것입니다. 동북아를 아·태지역 번영의 중심으로 만들 것입니다. 이는 일본의 국익에도 전적으로 부합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통일한국은 믿음직한 일본의 동반자가 될 것으로 굳게 믿습니다. 일본 국민과 정부당국의 한반도 통일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한·일 양국은 아·태지역 전체의 공동 번영을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아·태지역의 장래는 한·미·일 3각 협력관계와 아시아 국가간의 협력에 의해 크게 좌우될 것입니다. 이 세 나라간의 협력관계는 아시아 공동 번영에 핵심적 요소이며, 태평양 공동체 발전에 중심적 요소라 할 수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은 이러한 협력관계 발전을 통해, 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촉진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나아가서, 아·태 공동체 실현을 앞당길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은 일본, 그리고 중국과 더불어 책임있는 역할을 수행할 것입니다.

     세계는 지금, 커다란 방향전환을 모색하고 있는 일본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변화는 아시아는 물론, 세계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일국 번영주의를 초월하지 않는 한, 진정한 공동체적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이 지역의 균형발전 없이 진정한 지역평화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국가간의 경제관계가 지나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불균형 상태에 있다면, 그러한 구조는 시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한·일·중이 중심이 되어 새로운 아시아를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인류에 기여하는 아시아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20세기의 태평양에는 태풍과 격랑이 몰아치기도 했습니다. 21세기 태평양 시대를 맞이하면서, 한·일 양국은 태평양을 「번영의 바다」로 만들어 나갈 책임이 있습니다. 이를 위해 먼저, 현해탄이 참된 「우정과 협력의 바다」가 되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한·일 양국 국민이 나라안을 여행하는 것처럼 빈번히 왕래할 수 있는 날이 머지 않아 오게 될 것입니다. 도쿄, 서울, 평양, 북경이 이웃처럼 가까워지는 날이 오리라 믿습니다. 그러한 시대를 향하여 함께 전진해 나갑시다. 나는 오늘의 연설이 한·일 동반자 시대를 여는 새로운 이정표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마지 않습니다.

     경청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日本 國會 演說文, 1994. 3.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