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순수한 민간인 출신으로서는 31년 만에 처음으로 집권당의 총재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이제 명실상부한 문민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뜻합니다. 지금 우리 국민과 역사는 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집권 여당이 개혁을 외쳐 온 야당 출신인 저를 총재로 선출했다는 사실은 이 시대와 국민이 원하는 변화를 선택했다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2년 반전 3당 통합으로 민주자유당을 출범시켰습니다. 저로서는 표류하던 국내 정치를 안정시키고, 개혁을 통해 국민 화합을 다지며 나아가 민족 대통합의 기반을 마련한다는 일념으로 3당의 통합을 결행했습니다. 그 동안 이질적 세력의 통합으로 반목과 갈등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를 털어 버리고 한 몸이 되었고 국민이 그리고 역사가 요구하는 변화를 선택했습니다. 국민들은 우리의 용기와 결단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 줄 것을 굳게 믿습니다.
당원 동지 여러분!
이제 국민이, 역사가 변화를 원한다는 이상 먼저 민주자유당 스스로 변해야만 합니다. 이제야말로 당원 여러분은 당의 참된 주인이 되어야만 합니다. 여러분은 건국이래 처음으로 집권당 대통령 후보를 자유경선으로 뽑았습니다. 앞으로 우리 당의 모든 의사결정은 아래서 위로 올라가는 당내 민주화가 이룩되어야 합니다. 민주자유당은 국민의 저력을 결집시키고 변화를 주도하는 개혁 정당으로 탈바꿈해야만 합니다. 한국 정치사에서 집권 여당이 어느 정당보다도 오히려 더 개혁적인 정당임을 보여 주어야만 합니다. 여러분은 20세기를 마감하고 21세기를 여는 전환기에 밝고 건강해진 조국을 창출해서 다음 세기로 인계하는 주체 세력이 되어야만 합니다.
당원 동지 여러분!
밝고 건강한 조국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현실을 바로 진단해야만 합니다. 우리 사회는 지금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해이된 기강과 무책임, 돈이면 안되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황금만능주의가 만연되어 있습니다. 지난 몇 년간 민주화의 과정에서 권위주의는 많이 사라졌지만 안타깝게도 권위도 질서도 무너져 버렸습니다. 위도 아래도 없고 서로 믿지 못하는 사회가 돼 버렸습니다. 젊은이들은 가치관의 혼란 속에서 방황하고 있습니다. 과소비와 사치가 도를 더해 갑니다. 계층간 지역간 세대간의 갈등은 더 깊어져 갑니다. 이같은 모든 현상을 한국병으로 진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때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불리던 한국의 경제도 침체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기업인은 기업인대로, 농민은 농민대로 의욕을 잃어 가고 있습니다. 주부들은 시장 가기가 무섭다고들 합니다. 세계 시장에서 우리 제품이 후진 개발 국가에 밀리면서 국제수지는 3년째 적자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지금을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난국이라고들 말하기도 합니다.
당원 동지 여러분! 그리고 국민 여러분!
저는 그 동안 역대 정권이 이룩한 경제 성장의 업적, 특히 6공화국의 민주화와 북방정책의 성과를 부정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병폐와 경제적 침체는 급속한 성장과 민주화 과정에서 빚어진 과도기적 현상이라는 것도 인정합니다. 그러나 지금 이대로는 절대로 안되겠다는 것이 우리 국민 모두의 마음입니다. 저의 생각도 그렇습니다. 이 모든 것이 저 자신을 포함한 정치인 모두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와 우리 당원 모두는 옷깃을 여미며 이제부터 국민과 함께 호흡하고 국민의 주름살을 펴 주는 생활 정치를 해 나가겠다는 것을 다짐합니다. 그래야만 우리 정치, 우리 경제, 우리 사회는 새롭게 변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가 새롭게 변화하려면 강력한 정부, 강력한 지도력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한국병을 뿌리부터 고쳐야만 합니다. 우리 사회의 건강을 회복시키기 위해 대담한 수술을 해야만 합니다. 만연된 부정부패, 구조적인 부조리의 사슬을 끊어 내야만 합니다. 공공 질서를 어지럽히는 개인 이기주의, 집단 이기주의에 강력한 제재가 가해져야만 합니다. 부녀자들이 안심하고 밤거리를 다닐 수 있도록 우리들이 만들어 내야만 합니다. 그 동안 민주화의 과도기에서는 어쩔 수 없이 관용과 인내의 지도력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새로 탄생할 정부는 명실상부한 정통성을 가진 민주정부이기에 눈치를 보거나 주저하지 않을 것입니다. 단호하게 맺고 끊는 민주정부가 될 것입니다.
강력한 정부, 강력한 지도력은 깨끗하고 정직한 지도자에게서 나옵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습니다. 저는 상도동에 집 한 채 밖에 없습니다. 앞으로도 그것밖에 없을 것입니다. 제가 대통령이 되었다가 물러나더라도 조금도 변하지 않은 옛모습 그대로의 지금의 집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우리는 두 가지 악폐만은 반드시 고쳐야 합니다. 하나는 금력으로 권력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과 또 하나는 권력으로 재산을 만들 수 있는 생각입니다. 이같은 생각들은 기필코 뿌리를 뽑고 말겠습니다. 지도자의 도덕성은 건강한 사회와 건강한 나라의 기본입니다. 저는 도덕 정치를 최고의 가치로 삼으려 합니다.
다음으로 강력한 정부, 강력한 지도력은 집권 과정부터 정당할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불법 부정한 수단으로 잡은 권력으로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참된 힘은 총구나 금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바로 도덕성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저는 부정한 방법으로 대통령에 당선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제가 국회 특별위원회로 하여금 대통령선거법을 바르게 고치도록 한 것은 저 자신 공정하고 정정당당한 경쟁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깨끗한 선거를 반드시 치르고야 말겠습니다.
깨끗하게 출발한 정부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인사의 쇄신입니다. 인사는 만사라고 합니다. 우리 사회의 병폐와 지역간의 경제 사회적 불평등은 대부분 인사의 불공정 때문입니다. 어느 지역 어느 학교 출신이며 누구의 친척이냐에 의해서가 아니라 무엇을 할 수 있는지가 자리를 정하는 기준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국민적 대화합을 이룩할 수 있도록 획기적인 인사 제도를 마련할 것입니다. 저는 유능한 인재를 지역간에 골고루 등용해서 멋진 정치를 국민에게 해 보이겠습니다. 화해와 통합의 새 역사를 만들어 나가는 큰 정치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는 역시 경제를 살리는 일입니다. 침체의 늪에 빠져 있는 용을 다시 하늘로 솟구쳐 오르게 해야 합니다. 저는 침체된 경제를 일으켜 활력이 넘치는 경제로 재도약 시키는데 저의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우리는 지금 안팎으로 거센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안으로는 우리의 강점이던 풍부한 노동력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밖으로는 경제 지역주의와 기술 보호주의가 거세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사고와 행동, 제도와 조직으로는 이같은 도전에 이길 수 없습니다. 발상의 대 전환이 필요합니다. 저는 무엇보다 기업과 국민의 자발적인 참여와 창의가 경제활성화에 가장 큰 원동력이 되리라 믿습니다. 이제는 기업과 국민이 정부보다 더 잘해 낼 수 있다는 것이 저의 판단입니다.
정부는 규제와 간섭을 최대한 줄이는 작은 정부가 돼야만 합니다. 그러나 효율적으로 기업을 잘 도와주는 정부여야 합니다. 공직자들이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와 국민들에게 봉사할 수 있도록 모든 여건을 마련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우리의 경제는 노동자와 기업, 그리고 정부가 삼위일체가 되어야 합니다. 땀흘린 만큼 열매를 거두는 경제정의가 실현돼야만 합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나, 남자나 여자나, 힘있는 사람이나 힘없는 사람이나 모두 떳떳이 일하고 떳떳이 살 수 있는 시대로 반드시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우리 농업도 경쟁력 있는 산업으로 만들어 농촌을 살기 좋고 활기찬 곳으로 바꾸어야만 합니다. 중소기업이 우리 경제의 튼튼한 뿌리가 되도록 만들겠습니다. 국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정책은 일관성이 중요합니다. 정책이 왔다갔다하면 손해를 보는 것은 농민이요 기업이요 바로 우리 국민 모두입니다. 저는 예측 가능한 정치를 늘 말씀 드렸습니다만 정책이 일관성이 있어야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게 됩니다.
정책 결정과정 또한 깨끗하고 투명해야만 합니다. 권력과 금력의 연결고리는 끊어야 합니다. 정경 유착이란 단어는 이 나라에서 없어져야만 합니다. 중요 국가 사업들이 지역 이기주의나 집단 이기주의에 따라 좌우돼서는 안됩니다. 국가 전체의 이익과 재정 능력을 감안해서 우선순위가 정해져야만 합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실현성 없는 공약은 하지 않겠습니다. 강력하고 안정된 민주정부가 들어설 때 경제는 스스로 살아나 발전하게 될 것입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병폐를 근원적으로 고치는 길은 결국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사람다운 사람을 길러야만 합니다. 위아래 알아보고 질서를 지키며, 절약하며 부지런히 일하는, 말하자면 훌륭한 민주 시민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같은 인간 교육은 아주 어려서부터 시작해야만 합니다. 청소년은 입시 지옥에서 벗어나야만 합니다. 연구하는 대학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여기에 과학기술로 무장시킨다면 이 나라의 장래는 더욱 밝아질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참으로 많습니다. 우리의 아들 딸들이 마셔야 할 강물과 숨 쉬어야 할 공기가 맑아져야 합니다. 짜증나고 낭비가 심한 교통 체증도 시원히 뚫어야 합니다. 이 모든 일은 건강한 조국을 만드는 일입니다.
국민 여러분!
이제까지 건강해질 조국의 모습에 관해 말씀 드렸습니다. 우리의 최종적 목표는 민족의 대통합입니다. 오늘의 주변 정세는 민족 대통합에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북방정책은 중국과의 수교로 절정에 달했습니다. 북한도 이제 시간이 그들 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이제 문을 활짝 열고 대화에 나와야만 합니다. 저는 금세기 안에 통일이 이루어지리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통일에 관한 뜨거운 감정만으로 서둘지는 않겠습니다. 우리가 서두르면 감당하기 어려운 시행착오가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통일 정책의 내실화가 필요합니다. 통일에 대비해서 한반도의 개발계획을 세우고 민족 동질화 교육을 시키고 비용을 축적해 나가는 일입니다. 그러나 북한의 핵 개발 문제에 대해서는 강력한 대응이 있어야 하며, 이산가족 상봉 등 인적 교류는 무엇보다 우선해서 추진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통일은 차분하고 내실 있게 추진될 때 생각보다 눈앞에 빨리 다가올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저는 이 순간 가장 중요한 것은 상식과 원칙으로 돌아가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상식과 원칙에 충실할 때 모두 제자리로 돌아갈 때 우리 사회는 건강해지고 활력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일들은 정부나 지도자만의 일은 아닙니다. 국민이 함께 해야 합니다. 국민 모두가 제자리로 돌아가 열심히 제 일을 하는 대 참여의 시대를 열어야 합니다. 참여하는 국민만이 국가에 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저도 제 책임을 다하는 한 국민에게 요구할 것은 당당하게 요구하겠습니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다시 뛸 각오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책임 있는 국민의 시대를 열 수 있습니다.
친애하는 당원 동지 여러분! 그리고 국민 여러분!
지금 우리 국민은 이상한 좌절감, 패배감에 젖어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현재 상황이 답답하다는 것은 이미 말씀 드렸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가장 큰 적은 바로 이 좌절감입니다. 개인이나 국가나 도전이 있게 마련이고 이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흥하기도 하고 망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저 자신도 스물 다섯 살 때 국회의원에 도전한 이래 40년 가까이 숱한 정치적 도전의 역정을 보냈습니다. 어둡고 괴로웠던 때를 수없이 겪었습니다. 그러나 희망을 잃지 않고 때가 오면 지체 없이 결단을 내려 기어이 목표를 달성하고 말았습니다.
우리 국민은 엄청난 저력을 가진 민족입니다. 올림픽에서 마라톤을 제패했고 종합 성적 7위를 기록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힘을 합치면 못할 일이 없는 나라입니다. 제가 대통령이 되면 이 시대에 이 나라에 태어난 것을 자랑으로 여기도록 꼭 만들겠습니다. 이 김영삼은 이제부터 확실하게 변화를 보여 주겠습니다. 화려한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 주겠습니다.
2백만 당원 동지 여러분!
이제 우리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결단의 순간이 3개 월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우리 다 한 마음으로 한 몸으로 굳게 굳게 뭉칩시다! 최후의 승리를 위해 우리의 온 힘을 다 바칩시다! 그리하여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반드시 우리들은 압승합시다. 이를 통해 민족에게 통일의 감격을, 국민에게 민주화의 열매를, 그리고 서민에게 민생 안정의 만족감을 우리 가득히 안겨 줍시다. 지금 일어나 온 국민과 함께 다시 시작합시다. 이 김영삼과 함께 뜁시다.
우리들은 마침내 승리할 것입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1992. 8. 28. 김영삼 민주자유당 총재 취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