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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할 자유, 야당 할 자유


여당 할 자유, 야당 할 자유


    민자당이 변화를 통해 이룩한 성과는 민주 대 반민주의 대결 구도 이른바 정통 야당이니 여야 사이의 적대감이라는 정치의 한 국면을 넘어선 것도 포함된다.

    5.16 이래 우리 정치에는 두 흐름이 있었다. 하나는 군사 문화를 승계한 세력이다. 경제 개발을 우선해 왔고 성공한 점도 있지만 야당에게는 반민주 세력이었다. 다른 하나는 민주 세력이다. 민자당에게는 이 두 세력이 결합해 있다. 민자당은 군부 개발 우선주의 세력이 아니라 문민 민주세력으로 변하고 있다. 민자당의 변화에 따라 야당도 변할 수밖에 없었다. 민자당 안에 야당을 경험한 사람들이 있듯이 야당에도 여당을 경험한 사람이 있었다.

    이제 여당과 야당은 민주 대 반민주라는 대결이나 헌법논쟁, 정치적 논쟁이 아니라 민생 문제 같은 공공의 문제를 가지고 국민의 지지를 경쟁하는 정책 경쟁, 정책 논쟁으로 옮아갈 것이다. 내가 민자당의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뒤 일본의 한 신문은 김영삼 씨가 대통령이 될 경우 노 대통령이 쌓아놓은 민주화를 바탕으로 반체제 세력도 포함하는 민주 정치의 제도화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글을 실었다고 했다. 게이오 대학의 오코노키 교수는 이 글에서 한국의 정치 안정을 위해서는 김영삼 씨가 당선되는 것이 유리하다. 이럴 때 한국 정치는 이번 대통령 선거를 계기로 선진국과 같은 조정의 정치로 접근할 것이라고 썼다.

    내가 이 견해에 관심을 갖는 것은 체제니 반체제니 해서 충돌과 희생이 없는 정치, 여당과 야당 사이, 정치와 이익단체 사이에 혹은 이익단체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이 대화로 조정되는 조정의 정치를 원하기 때문이다.나와 민자당은 조정의 정치에 다가갈 조건을 갖추어 있지 않나 생각한다. 민자당 안의 나를 비롯한 민주계는 현재 활동하고 있는 정당이나 정치단체와 인연을 가지고 있다.

    나의 정치 이력 중 3당 합당을 한 최근의 2년 8개월 말고는 내내 야당 생활을 했다. 제1 야당인 민주당과는 오랜 기간 당을 함께 했다. 김대중 씨의 평민당계와는 1987년까지, 이기택 씨의 민주당 계열과는 1990년 1월까지 정당을 함께 했다. 지금 민주당 안에는 재야 민주화운동을 하던 이들도 있다. 재야 민주화운동을 하던 사람들과도 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함께 했다. 그 무렵은 요즘 같은 민주 시대가 아니고 민주화운동과 감옥이 아주 가깝게 있던 어두운 시대였다.나는 1983년 단식 투쟁을 통해 민주 세력이 두려움 같은 데서 뛰어나와 민주화운동에 나서도록 촉구하는 봉화를 올렸다. 나는 단식에서 회복된 뒤 정치 규제에 묶인 민간 정치인들과 유신 체제이래 민주화운동을 해온 재야 민주운동단체를 재조직하도록 돕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데모도 같이 하고 최루탄에 눈물도 함께 흘리고 구속자와 그 가족의 모임에도 참가했다.

    민자당 안에는 야당 및 재야 단체들과 어려운 시대 고통과 수난을 함께 나누었기 때문에 끈끈한 정리와 신뢰라는 연결 고리가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야당과도 한때 정당을 같이하면서 협동했던 인연이 있다. 이런 관계는 서로가 마음을 열고 대화하고 타협하는 조정의 정치를 열 수 있는 좋은 조건이다.10.26 후 김종필 씨가 공화당 총재로 취임한 뒤 신민당사를 방문해 환담하면서 야당을 할 결심이라고 했다. 박 대통령은 비명에 가고 재집권을 바라기 어려운 공화당 총재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듯했다. 그 얘기 끝에 우리는 누가 야당을 하건 박해, 불이익, 두려움 없이 야당을 할 수 있게 하자고 했다.

    1987년 6.29 이래 야당의 영역은 넓어지고 있다. 박해니 봉쇄니 하는 것은 없다. 여당 할 자유와 마찬가지로 야당 할 자유도 넓게 열려 있다. 3당 합당은 여당과 야당의 거리를 가깝게 했고, 나는 더 가깝게 재편성하고 있다. 나라를 사랑하는 것, 민주주의를 하려는 결의, 평화와 번영을 추구하는 마음에서 모든 정당이 기본적으로 같다는 믿음 안에서 선의의 경쟁을 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했다는 자랑을 나는 간직하고 있다. 이제 내가 걸었던 가시밭길의 야당은 역사 책 속에 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