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의석이 내각에 반영되는 것은 내각제 하에서나 있는 일이다. 따라서 평민당이 시국 수습책이라고 내놓은 것은 노 대통령이 평민당과 연립 내각을 구성하고 내각제 개헌을 하고 그런 다음 연립 정부를 한다는 공약 아래 선거를 치르는 방법을 연구해 보라는 의미로 해석할 만한 제안이라고 할 수 있었다.7월 국회를 앞두고 6월 말에 열린 청와대 회담도 당면문제를 국회에서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보다 내각제를 더 무게있게 논의한 것처럼 보였다. 김대중 총재는 내각제 논의 내용을 이렇게 공개했다. 내각제와 관련해서 분명해진 점은 우선 내각제 개헌이 되더라도 노 대통령 자신은 권력에 남아 있을 생각이 없다는 것과 금년에는 개헌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 그리고 개헌을 하게 되면 사전에 평민당에 얘기를 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노 대통령이 나는 3김씨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기 위해 내각제에 관심을 갖는 것이니 대통령제 하에서도 자신이 있으면 해 보시오 라는 얘기도 하더라, 대충 이런 요지다.

    김 총재의 이런 얘기는 개헌에 음모가 있다고 말해 왔는데 노 대통령 얘기를 들어보니 음모적인 것은 없더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개헌 추진파들은 그러면서 김대중 총재는 개헌을 바란다고 희망적으로 해석을 했다.부통령제 개헌론도 석연치 않았다. 김대중 총재는 대통령 결선 투표와 부통령제를 신설하는 개헌안을 전당대회에서 당론으로 정했다. 14대 총선에서 이걸 내걸어 대통령 선거전에 개헌을 한다는 것인데 전혀 실현성이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왜 전당대회에서 정책으로 확정했을까. 여 야가 개헌론을 제기하게 되면 현행 헌법에 고칠 점이 있다는 것이 홍보가 되어 개헌 정국을 열기가 쉽고 개헌 정국이 열리면 내각제도 공론에 부칠 수 있다.박철언 의원이 맞장구를 치고 김윤환 의원도 평민당이 부통령제 개헌을 공약으로 확정했으니 막후 접촉을 통해 내년에 개헌을 공론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합당 1년이 되던 때 나는 1년이 지난날의 10년 만큼이나 길고 고통스러웠다고 이야기했다. 합당을 하던 때 우리가 한마음으로 합의한 것은 정치가 안정되어야 민주주의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안정은 개혁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안정 속의 개혁이 아니라 개혁을 통한 안정이다. 개혁이란 법과 제도 그리고 행정 운용을 민주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일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평민당은 합당에 반대하는 정치 투쟁의 수단으로 국회를 볼모로 했고, 민자당 안에서는 내각제 개헌에만 집착하는 사람들이 문제를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