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중간평가가 없을 것으로 안다."
나는 이렇게 솔직한 답변을 했다. 나는 이날 회견에서 국가이익을 강조하면서 한국 정치는 보혁 구도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소련을 비롯한 북방의 변화로 남북 통일이 먼 장래의 일이 아니므로 이에 대비한 우리 정계의 개편이 불가피한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1989년 여름의 길목으로 접어들던 6월 27일 이후 한동안 한국사회에 충격을 가했던 일이 평민당 서경원 의원 밀입북 사건이었다. 서 의원은 1988년 8월 비밀리에 평양으로 들어가 김일성을 만나고 돌아왔는데 이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던 것이다. 나는 남북문제의 협의에 관한 한 창구가 단일화되어야 한다고 믿어 왔다. 나는 야당인으로나 정치인으로나 분명한 자세를 보여야 한다는 차원에서 "밀입북은 통일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국민 여론도 밀입북과 같은 급진적 행동은 통일을 오히려 지연시키는 장애 요소이며 대북 창구는 단일화되어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어졌다. 이때 김대중 총재가 서경원 의원의 밀입북을 사전에 인지했는지 여부를 가리기 위한 검찰의 구인수사를 받는 사태까지 발생해 정국은 몹시 경색되었다. 뒤이어 실시된 영등포 을구 재선거에서는 민정 평민 양당이 날카롭게 대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