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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당 안했으면 쿠데타 났을지도 …


합당 안했으면 쿠데타 났을지도 …


    세계의 질서가 변했고 지금도 변하고 있다. 우리도 그런 변화의 한복판에 있다. 남북관계를 포함해 주변 환경이 변하고 우리의 내부 질서도 변하고 있다.

    과도기적 현상이 있기는 하지만 민주화도 진행되고 있다. 정치를 보는 국민의 눈도 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국민의 질책 속에서 정당도, 정치인도 의식과 내부 질서를 바꾸어나가고 있다.

    정치 불신이 깊은 줄을 안다. 그러나 우리 정치가 권위주의 시대의 틀을 깨고 발전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런 변화는 1987년부터 시작되었다. 공산권을 포함해 온 세계에 자유와 민주의 바람이 일기 시작하던 때 우리도 30년의 군사 정치가 민주화의 물꼬를 열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 우리는 이제 막 시작한 민주주의를 위해 각 분야에서 과거의 틀을 깰 필요가 있었다. 정치 분야에서 능동적으로 해낸 것이 3당 합당이다. 합당은 정치의 대전환이고 발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왜 3당 합당을 했는가. 합당의 의미는 무엇이며, 그것이 만들어내는 변화는 어떤 것인가. 무엇을 이루어낼 것인가. 이런 것에 대해 우리가 국민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는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지 못했다.

    정치란 백 마디의 말이 아니라 실적과 결과를 통해 말해야 하는데 그 점에서 부족함이 많았다. 그렇지만 합당은 새로운 정치 질서를 만들어 가고 있고, 나라의 정치발전에 이바지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그동안 왜 합당했나 하는 질책 섞인 질문을 받은 때도 있다. 합당한 이유를 한 마디로 줄인다면 아무것도 되는 일이 없는 4당 구조로는 안 되겠다는 판단이었다고 대답한다.

    여소야대(與小野大)의 정국은 민정당 정권에 혹독한 시련을 안겨주었다. 5공 청산에 부대끼고 권력으로 덮어 눌러 온 문제들이 일시에 쏟아져 나왔지만 이것을 해결할 힘이 없었다. 대법원장 임명 동의안은 부결되고 법안을 내놓으면 처리과정에서 야권 3당이 손질해버려 입법 목표가 빗나가버리기 일쑤였다. 정부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생각 때문에 체념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야권 3당은 정책 연합을 하고 있었다. 5공 청산 등에 보조를 맞추는 것은 어렵지 않아 처음 한 동안은 순조로운 듯이 보였다. 그러나 견제와 협조에 균형을 잡지 못했다. 심하게 말하면 허약한 정부를 비틀거리게 하는 경쟁을 하는 것으로도 비쳤고, 그렇다고 야권 3당의 뜻대로 일이 진척되어 나가는 것도 아니었다. 예를 들어 대통령이 법안을 거부했을 때 재차 의결할 원내 3분의 2선을 갖고 있지 못했다. 처음 한 동안은 야권 3당이 정책 문제에서 의견을 통합해 절충을 했다. 그러나 얼마 못 가 야권 3당의 공동보조도 없어져 4당 4색이 되고 보니 문제를 해결하는 방책을 제대로 찾지 못했다.

    민주주의라는 것은 모든 문제를 순리로 해결하는 제도다. 그런데 의견을 나누는 통로마저 없는 것이 4당 구조였다. 이대로 가다가는 엄청난 희생을 치르면서 열어놓은 민주화에 국민들이 실망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3당 합당을 안했더라면 쿠데타가 일어났을지도 모른다고 여러 차례 이야기했다. 1989년 무렵부터 모든 분야에서 질서가 위태로웠다. 치안만 해도 경찰로는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군인과 헌병에게 치안의 일부를 맡기는 문제를 정부가 검토했다. 정부에서는 이 문제를 두고 심각하게 검토했는데 문민정부를 위태롭게 한다는 의견이 있어서 보류했다고 했다.

    [많은 나라들이 위기를 쿠데타로 해결했다. 현재 치안상황이 어렵기는 하지만 군에 치안의 일부를 맡기는 것은 위험하다. 군이 설령 야심이 없다 해도 치안이 군에 의해 확보되면 자연히 힘의 중심이 군으로 넘어간다. 정부 안에서도 이런 의견이 나왔다는 것인데 1980년 서울의 봄에 값비싸게 배운 우리의 경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