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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로 민중의 한을 씻는다


민주주의로 민중의 한을 씻는다


    한국인의 멋 또는 한국인의 특질에 관하여는 여러 견해들이 있고, 또 그것들이 모두 그 나름대로의 이치를 지니고 있다. 한국문화에 심취하여 한국문화의 연구에 일생을 바친 일본인 야나기(柳宗悅)는 한국문화의 멋과 묘미를 버선코의 살짝 올라간 곡선, 처마의 살짝 치켜든 곡선에서 찾았다고 한다. 세계 여러 나라의 신발을 다 보았지만 한국 여인의 고무신 같은 것은 보지 못했다고 한다. 나는 야나기의 재미있는 시선이 충분히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혹자는 한국문화의 멋을 고작 처마와 여인의 버선에서 찾는다는 말인가 하고 일소에 붙일지 모르나 나는 야나기의 그러한 착안에 감탄한다.

    또 한편으로 한국인의 멋을 은근함과 끈기에서 찾음도 알고 있다. 대체로 이러한 견해의 출발은 한국 민족이 외세의 침략으로 얼룩진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나라의 명맥과 민족의 전통을 이어왔다는 역사적 사실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여진다. 은근한 것 같으나 끈기가 있고, 모르는 척하나 속으로 헤아리고 있는 한국인의 특질을 그 나름대로 집어낸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또 돌부처 등 각기 흩어져 남아 있는 문화재들의 얼굴에서 역시 한국인의 은근함을 헤아려볼 수 있다. 부처의 조용한 미소를 머금은 표정은 가히 은근함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본보기라 할 것이다.

    그런데 한국인의 특질 내지 그 민족성을 은근함과 끈기로 규정하는 데 대하여 나는 다소 이의가 있다. 나는 한국인의 특질 가운데 하나로 은근함과 끈기가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는 데는 찬성한다. 그러나 은근함과 끈기가 한국인의 특질을 대표하는 것이 될 수 없음은 은근함과 끈기가 한국인의 적극적 특질이 아니라 수동적 특질이기 때문이다.은근함과 끈기는 외세의 침입, 권력의 탄압과 수탈, 신분제도의 질곡과 억압 속에서 형성된 수동적인 특질의 일면일 것이다. 이러한 소극적이며 피동적인 특질을 한국인의 민족성을 대표하는 것으로 제시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차라리 은근함과 끈기보다는 한(恨)이라는 주제가 민중적 전통에 훨씬 더 걸맞는다고 생각한다. 결국 한이라는 것도 권력의 억압과 수탈 속에서 살아온 민중적 정서임에는 은근함과 끈기가 그런 것과 마찬가지이다. 한 그 자체로서는 다소 패배주의적인 측면이 있다는 점도 마찬가지이다. 억압을 당하고 수탈을 당하며 진실로 억울한 일을 당해도 그 울분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제도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그 어느 곳에도 없다. 당한 사람만 억울할 뿐이었다. 양반보다 더 똑똑한 상사람이 수도 없이 많아도 그 신분제도를 뛰어넘을 길이 없다. 그럴 때 밖으로 향하여야 할 울분이 안으로 고여 침전되어 쌓이는 것, 이것이 한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흔히 말하는 바 화병, 또는 울화병이라 하는 것이 한의 한 형태임은 물론이다.

    그런데 이 한이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나 쌓이고 쌓이면 커다란 한의 덩어리가 된다. 이것은 침전되어 고여 있으나 언제나 응고될 가능성이 있고, 응고된 한이 터질 경우에는 엄청난 폭발력을 갖는다. 이런 점에서 은근함과 끈기라는 정서가 정적인 데 비해 한이라는 정서는 동적이다. 역사적 사실을 문학적 상상력과 결합하여 그것을 형상화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역대의 민란과 동학혁명 같은 것을 민중적인 한의 폭발로 파악하는 경우가 있는데, 나는 이것을 주목할 만한 착안이라고 생각한다. 쌓여 응고된 한이 폭발할 때는 그것은 거의 자연발생적이며 위력적이다. 조직적인 저항보다는 비조직적인 저항으로 되며, 따라서 자칫 그 엄청난 폭발력은 폭력으로 흐르기가 쉬운 것이다.

    나는 한국 민중의 전통적인 정서를 한으로 파악함에 있어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한이 왜 민족의 전통적인 정서로 되었느냐 하는 것에 대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민중이 당한 억울한 사정을 호소해서 시정할 수 있는 길이 폐쇄되어 있고, 민중의 자기실현이 봉쇄되어 있는 억압적 체제 때문에 생겨난 것이었다. 결국 민주주의의 길이 없기 때문에 한이라는 형태로 쌓여 응고될 수밖에 없었다. 민중이 자신의 욕구와 창의를 발휘할 수 있는 체제하에서라면 한은 생겨날 수 없다. 꽉 막힌 사회에서 생겨날 수밖에 없는 것이 한이다. 말하는 바 한 많은 사연이 남자보다 여인에게 더 많은 것은 지배하는 체제 자체가 꽉 막혀 있는 억압의 체제인 데다 여인은 또 가족제도라는 더 꽉 막힌 이중의 고통과 억압을 당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한은 안으로 침전되는 정서임에는 틀림없으나 그것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적극성을 가진 개념이다. 은근함과 끈기가 그것 자체로서 끝나는 것이라면 한은 진행중인 정서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은근함과 끈기라는 것과 한과는 차이가 있다. 한을 구태여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축적된 에너지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민중적 에너지의 축적된 형태가 민중의 한인 것이다. 한은 개체로 있을 때 각기 그 사연과 형태가 다르나, 대체적으로 그 연원과 출발이 같기 마련이다. 따라서 그것은 곧바로 집단의 한으로 연결되곤 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4.19 학생혁명을 파악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한은 비민주적인 체제와 억압의 산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와 민중적 정서로서의 한과는 밀접한 함수관계에 있다. 민주화의 거리가 먼 체제 속에서 한은 숙명적으로 생겨나고 축적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개별적이건 집단적이건 한의 형태는 억압과 질곡에서 발생하고 축적되는 것이기 때문에 한의 극복은 민주주의라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 나라에 있어서 진정한 민주주의자는 누가 말한 대로 한의 사제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중 속에 축적되고 응고된 한을 민주적으로 풀어주는 것, 그것이 진정 민주주의자들의 일이요, 정치인의 할 일이다.

    자칫 축적된 한이 일시에 폭발할 때, 과잉된 에네르기가 폭력화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한이 폭발할 때, 그것은 엄청난 파괴력을 수반한다. 내가 생각하기로 동학혁명이 조직된 혁명이었다기보다는 민중의 한의 폭발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전국에서 떨쳐 일어날 수 있는 것이었으되, 혁명의 수행과정은 비조직적일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동학혁명의 크기는 민중적 한의 폭발이라는 점에서 엄청난 것이었으나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그것의 실패는 일차적으로는 외국 세력의 개입에 있으나, 그것을 안에서 분석한다면 민중적 한을 한곳으로 집중시키고 통제할 수 있는 조직의 형성에 실패했기 때문이 아닌가 보여진다.

    나는 이렇게 폭발되는 한을 비폭력적 방식으로 유도하기 위해서는 민주적 정치역량의 형성이 또한 제일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정치가 있는 곳에 한은 그 정치를 통하여 발산될 것이나, 그렇지 못할 때 한은 민중 에네르기로 축적될 수밖에 없고, 그리고 언젠가는 엄청난 소리와 함께 폭발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진정한 민주역량은 그때 그 민중적 한을 항상 수렴하고 조직화하며, 비폭력의 방향으로 인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제일 중요한 것은 민중으로 하여금 한이 쌓이지 않게 하는 참된 민주정치의 실현이다. 민주주의는 단순한 정치의 민주화 뿐만이 아니라 분배의 정의를 실현하는 경제적 민주주의, 또는 산업민주주의를 포괄하는 것이어야 함은 물론이다. 집권자들은 흔히 누르면 된다고 생각한다. 백성을 우민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 속에서 민중적 에네르기가 한이라는 형태로 축적되고 있음을 모른다. 경제적 측면에서 볼 때, 근로자나 농민들의 생존권 투쟁은 자신들의 동물적 삶을 쟁취하고자 하는 원시적 본능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누른다고 모두가 해결된다고 보는 것은 지나친 근시안이랄 수밖에 없겠다.

    수천 년 동안 쌓이고 쌓인 민중의 한을 극복하고 청산하는 작업이야말로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과제요 책무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한의 정서가 우리 민족의 주조로 되어 있다는 사실은 슬픈 일이 다. 민중적 전통의 입장에서 볼 때 민주주의가 더없이 기다려지고 마침내 실현되어야 할 과제인 것도 이 때문이다.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될 때 한은 그 속에 수렴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