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질문은 김영삼 씨 당신에 대해서는 군인들이 좀 봐준 것 같은데 왜냐는 뜻이 담겨 있었다.
나는 답변을 이렇게 했다.
"이 문제는 나한테 물어볼 일이 아니지요. 내가 그 사람들한테 나는 왜 구속이 아니고 연금이냐 이렇게 물어본 일도 없고 … 그러나 질문이 나왔으니 내가 얘기를 하지요. 나도 누구한테 들은 얘기인데 그 사람이 누구라는 건 말 안하겠습니다. 정권의 중요한 사람이었고 지금은 이 정권하고 좋지 않은 사이의 중요 인사한테 들었습니다. 5.17 이후에 제일 문제가 된 것이 세 사람 문제를 어떻게 하느냐, 이것이 오랫동안 문제가 되었다고 해요. 모두 대통령에 나설 준비를 하던 사람들인데 이 사람들을 전연 말을 못하게 만들어야겠는데 어떻게 하느냐 그랬는데 세 사람 중에서 가장 문제가 된 사람이 저였다고 그래요. 그 이유는 1979년에 박정희 씨가 저의 총재직을 가처분하고, 또 10월 4일 저를 국회에서 제명했습니다. 그래 그것이 이유가 되어 가지고 10월 10일에 부산 마산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부산 마산 시민들이 들고일어나서 파출소 경찰서 세무서 이런 곳을 부수었습니다. 저를 국회에서 제명하고 신민당 총재 자리에서 쫓아내려 하고, 그런 야당 탄압 인권 탄압 여기에 항거한 것입니다. 그래서 박 정권은 그때 계엄령을 선포했습니다. 부산 마산에 1개 군단 병력이 투입되었습니다. 그러고도 수습을 못했습니다. 그때 김재규 씨가 정보부장이지요. 이 사람이 두 번인가 현장을 가 보고 이것은 방법이 없다. 그가 나중 재판정의 최후 진술에서 말했듯이 박정희 대통령을 제거하는 것 말고는 해결할 방법이 없다. 이래 가지고 10.26 사태가 일어난 것 아닙니까. 바로 1년 전 김영삼의 의원직 제명 이런 것이 도화선이 되어 부 마 사태가 일어났는데 만일에 김영삼을 자기네가 구속했다가 이게 알려졌을 때 부산 마산 대구가 어떻게 되겠느냐. 만약 이 지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면 이것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 김영삼이는 아무것도 안하는 걸로 하자. 그 사람들이 그렇게 결정을 했다는 것입니다. 내가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그 당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사람이 들려준 얘기가 그래요. 이 사람들이 며칠 후에 나를 연금했지요. 연금이라는 건 아무도 당장은 모르는 일입니다. 한국 신문에 안 나니까 사람들이 몰라요. 그때 1년 만에 연금이 해제되고 사람들을 만나니까 미국에 가 있는 줄 알았다는 사람도 있고, 왜 갑자기 조용해졌느냐, 왜 김영삼은 아무 말도 못하느냐, 그런 말들을 사람들이 했다고 그랍디다."
내가 답변에서 말했듯이 연금은 감옥과는 또 다른 고통이 있다. 제1차 연금은 이듬해 5월까지 1년간 계속되었는데 그 1년은 한마디로 분노의 1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