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 이 나라는 옛날 명칭으로 불리게 되었다. 상쾌한 아침이라는 뜻이다……. 오랫동안 독립을 위한 항쟁이 계속되어 여러 차례 폭발했다. 그 중에서도 중요한 것은 1919년의 봉기였다. 조선민족 - 특히 청년 남녀는 우세한 적에 항거하여 용감히 투쟁했다. 자유를 되찾기 위해 싸우는 조선민족의 조직체가 정식으로 독립을 선언하고, 일본인에 반항했을 때, 그들은 수없이 죽어갔고, 수없이 일본경찰에 구속되어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그들은 이와 같이 그들이 이상(理想)을 위해 희생하고 순국했다. 일본에 의한 조선민족의 억압은 역사상 실로 쓰라린 암흑의 일장(一章)이었다. 조선에서 흔히 학생의 신분으로, 또는 갓 대학을 나온 젊은 여성과 소녀가 투쟁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을 듣는다면 너도 틀림없이 감동을 받을 것이다.
이는 3.1운동이라는 민족적 거사(擧事)가 민족사에서는 물론, 세계사에서 어떠한 의미를 갖는 것인가를 말해주는 한 단면이라 할 것이다. 세계사에서 볼 때, 3.1운동은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승전국(勝戰國)들의 식민지 약소민족에 대한 탄압이 진행되는 한가운데서 일어난 것으로, 이에 영향을 받아 약소민족의 독립운동은 급격하게 불타오르게 되었던 것이다.
첫째, 중국에서는 3.1운동의 영향 아래 5.4운동이 일어났다. 현대 중국 탄생의 시발점이라 할 5.4운동은 자타(自他)가 공인하는 바, 3.1운동의 파급이었던 것이다.
당시 중국의 민족운동가들은 한국의 3.1운동을 격찬하고, 그로부터 배울 것을 절규하였다. 예컨대 당시에는 자유민주주의자였다가 뒤에 중국 공산당의 창당에 관여한 진독수(陳獨秀)는 1919년 3월 23일자의 [매주평론(每週評論)]에 "조선독립운동지감상(朝鮮獨立運動之感想)"이라는 글을 기고(寄稿)하고, 다음과 같이 평(評)하면서, 중국 민족의 궐기를 호소하였다.
이번의 조선독립운동은 위대하고 성실하고 비장하며 명료하고 정확한 생각을 갖추고 있다. 무력(武力)을 사용하지 않고, 민의(民意)에 기초함으로써 참으로 세계혁명사에 신기원을 열었다... 조선민족의 영광스러운 활동에 의해서 한층 더 중국민족의 위미(萎靡)하고 있는 사실의 수치스러움이 명백하게 되었다.
둘째, 인도에서도 국민회의파(國民會議派)의 독립운동이 3.1운동의 영향을 받고 급속하게 고조(高潮)되었다. 이는 앞서 인용한 네루의 글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들은 영국의 식민지 간접통치의 구조적 특징을 활용하여 3.1운동의 비폭력투쟁 방법까지 채택하였다. 이것이 나아가 자기의 실력으로 독립을 쟁취하는 원동력과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인도독립운동의 비약적 발전의 전환점을 이룬 간디 지도하의 1919년 4월의 사타야그라하사브하운동은 3.1운동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이었다.
셋째, 3.1운동은 인도지나반도(印度支那半島)와 필리핀과 아랍의 일부 지역의 민족독립운동에 영향을 끼쳤다. 서울대학교의 신용하(愼鏞廈) 교수는 [3.1운동의 재평가]라는 글에서 3.1운동의 세계사적(世界史的) 의의를 대체로 위와 같이 논하면서 다음과 같이 결말을 짓고 있다.
19세기와 20세기 전반기에 오늘날의 세계사는 인류의 4분의 3에 달했던 식민지, 반식민지 상태에서 신음하던 민족들의 생존의 역사를 무시한 채 강대국 중심으로 쓰여진 세계사이다. 이 시기에 있어 약소민족의 독립운동이야말로 세계사에서의 비중이 매우 크기 때문에 앞으로의 세계사는 약소민족을 비롯하여 전 인류가 포함된 객관적 세계사로 쓰여져야 할 것이다. 그때에는 3.1운동은 제1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강대한 승전(勝戰) 제국주의(帝國主義)에 대한 약소민족 독립운동의 과감한 첫 봉화(烽火)의 광명(光明)으로써 독립된 장(章)으로 쓰여지고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