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 자유의 물결이 넘치고 흘러서 저 멀리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미치게 하여 조국의 평화적 민주 통일을 이룩하고자 했던 민족의 열망이 바로 2년 전, 이 달에 탱크와 총칼 앞에 산산조각이 나고 대한민국 헌정사의 제헌적 절차에 의한 헌법의 정통성을 파괴하는 조작극이 연출되었던 것입니다.그동안 우리의 투쟁이 범국민적인 일대 민주화운동으로 확대되고 우리 민족의 의지를 세계 만방에 선양하는 데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었다고 스스로 평가를 하면서도 민주투쟁 과정에서 긴급조치의 제물로 투옥된 수많은 동지들이 차디찬 감옥에서 신음하고 있는 가운데 연말을 맞고 보니 착잡하고 비감한 심정을 가눌 수 없습니다.나는 여기서 다시금 이 운동을 위대한 승리로 이끌기 위해 보다 강력하게 전개함으로써 박차를 가하고자 합니다. 따라서 신민당은 원내외 투쟁은 물론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개헌의 불길을 계속 태울 것입니다.
첫째, 한 나라의 대통령이 자신에게 개헌을 청원한 일을 범죄로 몰아 군사법정을 만들어 15년의 체형을 주라고 명령한 것은 일찍이 세계 역사에 없었던 일이며, 또 그 명령 자체를 취소하고서도 이미 체형받은 사람만은 그대로 감옥에 가두어 놓고 있는 예도 일찍이 인류 역사에 없던 일입니다.소위, '민청학련 사건'만 해도 군사재판 내용을 진실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무자비한 고문 끝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있다고 온 국민이 믿고 있습니다. 용서받지 못할 이 '학정의 교과서'인 현행 계엄헌법이야말로 정의의 이름 아래 시급히 철폐되어야 합니다.
둘째, 나는 늘 북괴의 남침 위협을 내세워 독재를 강행하는 박정권의 통치방식을 '안보독재'라고 규탄해 왔으며, 북괴가 전면적인 남침을 해오리라는 정부의 주장은 한갓 국민에게 불안을 주려는 허구적인 선전에 불과하다고 주장해 왔습니다.미군이 한국에 주둔하고 있고, 한미간의 군사적 협력체제가 지속되는 한, 북괴가 남침할 수 없고, 현재의 국제적 여건으로 보아 북괴가 남침을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었습니다.이와 같은 나의 판단은 포드 미대통령의 방한으로 미국에 대한 방한공약이 확인되었고 미소 정상회담과 키신저 미 국무장관의 중국방문 등에서 나타난 주변정세의 발전으로 북괴의 남침 위협을 내세워 독재체제를 끌고 갈 명분이 없다는 것이 더욱 명확히 드러났습니다. '안보독재'의 명분이 완전히 소멸되었음을 국민이 알게 된 이 마당에 정부는 하루 빨리 민주체제로 전환하여 새로운 시대에 적응할 수 있는 민주적 개헌을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셋째, 박정권은 현행 헌법을 개정하여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선거하는 등 민주체제로 환원하면 그날로 북괴가 쳐들어와 국민이 몰살당할 듯이 위협, 선량한 국민을 우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민의 직접 선거로 세 번이나 집권한 바 있고, 자유당 정권보다 더 오래 계속한 박정권이 부끄러움도 없이 하는 이 말을 믿고 납득할 국민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는 세계에 용맹을 떨치며 정의감에 불타는 우리 60만 국군을 모독하는 것이며, 우리 국민의 투철한 반공 정신에 패배 의식을 불어넣는 것이고, 바로 그 효과를 노려 오직 정권만 연장하려 한다는 것을 국민 여러분은 아실 줄 믿습니다.
이와 같은 정치적 저의가 국민 앞에 드러나자 박정권은 자유당의 종말을 재촉한 관제 민의 조작에 나서기 이르렀으니 국민과 더불어 통탄해 마지 않습니다.우리 신민당은 국회에서 개헌을 관철하기 위해 '개헌기초심의특별위원회' 구성 결의안을 제출하였으나 여당이 끝내 거부하기 때문에 예산 심의를 거부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우리는 가두 데모까지 나서면서 투쟁을 전개했으나, 여당은 국민의 열화같은 소리에 귀를 막고 단독 국회로써 예산 심의를 강행했습니다.우리가 국회에 출석하지 않는 동안 여당 측은 줄곧 정상화를 외치다가 우리가 막상 조건없이 국회에 등원키로 결정하자, 무엇에 쫓기기너 한 듯이 예결안을 하루 앞당겨 원안보다 3백억 원이나 증원하여 사안을 처리함으로써 국회의원이 국민의 편에 서지 않고 정권의 편에 서서 오히려 국민 부담을 가중시키고, 세계 역사상 처음으로 76건의 법안 등을 불과 몇 시간 동안에 무더기로 날치기 처리해 놓았으며, 우리들이 당면한 중요 문제를 따지기 위해 소집 요구한 국회 본회의를 휴회 결의하여 문을 닫고 말았던 것입니다.
심지어 1974년 12월 2일에 열기로 여야간에 합의되었던 운영위원회마저 전날 밤에 소집하여 본회의 휴회 결의를 해버렸던 것인데 이와 같은 악랄한 처사는 나와 신민당을 궁지에 몰아넣으려는 얄팍한 정치적 장난이며, 우리가 요구한 개헌 문제, 포드 방한과 관련한 안보 문제, 구속인사 석방 문제, 학원 사태, 종교 탄압 문제 등에 대한 대정부 질문을 봉쇄, 기피하려는 비열한 행위라는 것을 국민 여러분은 또한 잘 아실 것입니다.
이와 같은 '날치기극'은 국민에 대한 배신이며, 양당제도와 의회제도 자체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폭거라고 규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이러한 여러 가지 사유를 볼 때 현 정부와 여당은 이미 정권을 담당할 능력을 상실한 집단으로 단정합니다.나는 우리 당 소속 57명의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농성에 들어가 우리 당의 강력한 의지를 만천하에 천명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따라서 우리들은 5일 오전 10시를 기해 국회 본회의장에 출석하여 농성을 시작할 것이며, 국민의 정당한 요구를 대변하여 다음 사항을 주장합니다.
1. 박대통령은 전 국민의 열망에 따라 조속한 시일 내에 헌법을 개정하여 민주 헌정을 다시 회복할 것.
2. 구속된 정치인, 종교인, 지식인, 학생 등 민주 인사들을 하루 속히 석방할 것,
3. 불법으로 폐쇄한 학원의 문을 즉각 열고, 학생들에게 공부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를 돌려줄 것.
4. 종교탄압, 언론탄압 등 일련의 억압 정치를 즉각 중지할 것.
5. 야당 탄압, 분열, 파괴 등 악랄한 정보 정치를 즉각 중지할 것.
나는 국민과 당원 동지들에게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우리의 투쟁은 반드시 승리할 것이며, 우리의 투쟁에 따라 승리의 시기가 단축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확신합니다.이 시간에 있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불굴의 투지와 불퇴전(不退轉)의 용기와 철통같은 단결이며 아울러 나는 국민 여러분의 절대적인 성원을 바라는 바입니다. 특히 60만 신민당원 동지들에게 당부하는 것은 우리 당원이 개헌 과업의 선두에 서야 할 역사적 사명을 인식해야 하며, 또한 지금 이 시간에도 부단히 우리 당을 분열시키고 파괴하려는 정보 정치의 마수가 뻗치고 있다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점입니다.나는 여기서 "정부란 정적이 많아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지자가 적을 때 쓰러진다"고 한 액튼 경의 말을 인용하면서 박대통령의 반성을 촉구하는 바입니다.
1974년 12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