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는 때로는 반동하고, 때로는 옆길을 걷지만 결국은 발전해왔습니다. 그것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투쟁과 이를 보호하기 위한 투쟁의 기록입니다.인류가 수천 년동안 이 투쟁에서 얻은 것은 다름아닌 '자유민주주의'입니다. 자유민주주의야말로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최선의 제도이며, 오늘 현재 이 이상의 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민주주의에는 반드시 주권재민이라는 대원칙이 있습니다. 주권자인 국민에게 정권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가 보장되는 것이 바로 주권재민의 원칙입니다.나라에 따라 방법이 다를 수 있으나 이 원칙만은 변질될 수 없으며, 그것이 변질될 때는 민주주의일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원칙을 잘라놓고 여기에 'GNP'니 '안보'니 '통일'이라는 명분을 접목한다고 해서 민주주의일 수는 없습니다.
오늘날 민주주의를 신봉해온 국민들이 민주사회에 살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지 못하고, 오늘의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신랄하게 비판받는 것도 바로 여기에 기인하는 것입니다. '10월 사태(유신)'만 하더라도 과연 어떤 국리민복을 가져왔습니까?
평화통일을 명분으로 한 '10월 사태'가 있은 뒤, 남북관계는 오히려 악화되어 통일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일단 환상으로 사라졌습니다.안보 지상주의의 구호 밑에서 국민은 과중한 국방비를 부담하고도 부족하여 방위성금까지 바치고 있는데도 국방상의 허점은 연속적으로 노출되어 국민의 불안은 극도로 심화되고 있습니다.국회는 중대한 의제가 산적된 것을 외면하는 집권세력에 의해 임시국회 한 번 여는 것마저 거부당함으로써 의회 부재현상은 뚜렷한 사실로 입증되었습니다.수출 지상주의 경제 밑에서 국민은 그래도 내일에 대한 기대를 걸고 참아왔는데, 결국은 부패한 소수 권력층이나 이들과 결탁한 소수 재벌만 치부시키고 국민대중은 살인적인 물가고와 중과세에 생존권마저 위협당하고 있습니다.10월 사태 자체도 그 정당성을 국제사회에 인정받지 못한 데다, 긴급조치의 연발로 사상 유례없는 외교적 고립상태에 빠져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입니다.
이와 같은 일련의 사태는 분명히 국가적인 중대 시련이며, 그 책임은 전적으로 정부에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권층은 문제의 본질을 외면한 채 '힘의 정책'만으로 '정권의 성역화'를 영구화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 중대하고도 심각한 오늘의 시점에서 전통 야당으로 자처하는 신민당이 과연 무엇을 해야 되겠습니까?
우리는 결코 이 암담한 현실에 안주할 수 없습니다.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민주주의의 회복을 위해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투쟁하는 것입니다.그것이 바로 공산주의에 이기는 길이요, 평화통일에 접근하는 길이요, 국민적인 안보태세를 강화하는 길이요, 국제사회에 신뢰를 되찾는 길입니다. 이 두꺼운 '현실의 벽'을 뚫고 국민의 자유로운 참정권 행사로서 선택할 수 있는 평화적 정권 교체의 시대로 전진하는 과업이야말로 우리 신민당에게 주어진 역사적 사명인 것입니다. 나는 이와 같은 사명을 깊이 인식하고 내 스스로 십자가를 짊어질 비장한 결심으로 8월 임시전당대회에서 총재 경선에 나서겠다는 결심을 당원과 국민 앞에 공식으로 선언하는 바입니다.
나의 이 도전은 단순한 당권도전이 아니요, 궁극적으로 정권에 도전하는 한 단계에 불과합니다. 나는 결코 당수를 하기 위해 당권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힘을 얻고자 당수가 되려 합니다. 민주국가에 있어서 정당의 존재가치는 정권에 도전하는 데 있는데 정권에 대한 도전을 기피하고 당권에 안주하겠다는 사람은 당수가 될 수 없습니다.나는 이번 대회야말로 단순한 야당의 행사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장래를 좌우하는 역사적인 계기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이번 대회는 우리 국민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중대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오늘 이 선언을 함에 즈음하여 먼저 정부에 대해 다음 사항을 요구합니다.
1. 대통령 긴급조치를 즉각 해제하고, 긴급조치에 의하여 구속된 정치인, 학생, 종교인, 지식인에 대한 군사재판은 모두 일반 재판에 회부하여 재심토록 할 것.일제 식민지하의 재판도 학생에게는 관용을 베풀었음을 상기하여 학생들에게 관대한 조치를 취하고, 두 일본인에 대해서는 한일관계를 고려, 정치적 또는 외교적인 처리 를 할 것.
2. 정치적 보복의 인상을 주는 김대중 씨를 포함한 모든 정치인에 대하여 정치적 재판을 일체 중지하고, 이같은 정치적 재판에 희생되어 이미 복역중인 신민당 소속 전 의원들도 8월 전당대회에 참석할 수 있도록 석방조치할 것.
3. 정부는 정보정치를 지양하고, 야당 활동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를 보장할 것.
이상 내가 요구하는 일련의 조치는 국가적으로 매우 유익한 것이며, 그 시기에 있어서도 지금이 가장 적절할 것입니다.나는 특히 야당의 전당대회가 정부를 비판할 자유가 없고 언론이 국민에게 알릴 것을 알리지 못하는 중압된 상황에서 열려야 하는 불행을 피하는 것이 그 어떤 선전보다, 그 어떤 외교보다도 가치가 있다는 소신에서 정부의 반성과 용단을 촉구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60만 신민당 당원 동지 앞에 분명히 합니다.
나는 이제 여러분의 절대적인 지지를 호소하면서 여러분의 소명에 의해 총재의 중책을 맡게 되었을 때 해야 할 다음 사항을 엄숙히 약속합니다.
1. 국민으로부터 믿음을 얻고, 국민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국민과 호흡을 같이하는 선명한 야당으로 당을 재건하여 민주회복을 위한 과감한 투쟁을 전개한다.
2. 정당이나 개인을 막론하고 모든 민주세력에 문호를 개방하여 언제든지 정권을 담당할 수 있는 국민적 정당으로 발전시킬 것이며, 이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될 때는 언제든지 당수 자리를 내놓는다.
3. 당헌상의 비민주적인 요소를 제거하고 당의 운영을 민주화하여 당원들의 참여의 폭을 확대하며, 당의 조직을 활성화한다.
4. 참신한 지식인을 광범위하게 영입하여 정책기구를 강화, 창조적인 정책을 연구, 내실있는 정책정당으로 체질을 개선한다.
나는 이와 같은 막중한 과업을 성취하면서 막강한 현 정권과 맞서 투쟁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단일 지도체제가 고수되어야 하며, 여기에서 집단지도체제를 운운하는 것은 당을 무력화시키려는 불순한 책동에 불과하다는 점을 명백히 규정하면서 대의원 동지 여러분의 현명하고도 애당(愛黨)적인 결단을 기다리겠습니다.어둡고 괴로운 야당의 길을 오직 지조와 투지로써 걸어온 동지들의 양심을 믿습니다.어떠한 타락된 매수 작풍이나 어떠한 불순한 권력의 작용이 몰아닥친다 하더라도 사명감에 투철한 동지 여러분들은 당수를 선택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유만은 사수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어떤 길이 당을 살리는 길인가? 어떤 길이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길인가? 어떤 길이 민주회복을 위한 거점이라도 확보하는 길인가?그것은 이미 동지 여러분의 마음 속에 결정되어 있을 것입니다.
끝으로 애국적인 국민 여러분과 친애하는 당원 동지 여러분에게 소리 높여 외치고 싶습니다.오늘의 현실에서 '민주회복'을 위한 투쟁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압니다. 그러나 우리는 싸우기도 전에 굴복하고, 노력하기도 전에 좌절해버리는 패배주의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자유는 싸우는 자의 것이며, 승리는 용기있는 자의 것'입니다.이 싸움의 길이 아무리 험하고 고난에 찬 것일지라도 우리는 싸워야 하며 또 이겨야 합니다. 아무리 강한 정권이라 하더라도 정권은 짧은 것이며, 민족은 영원한 것입니다.나는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이 역사적인 민권투쟁 대열에 앞장서겠습니다.로마의 공화정치를 회복하려고 싸우다 죽어간 그라쿠스 형제의 운명이 나에게 닥친다 하더라도 나는 결코 이 길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나의 승리가 국민의 승리요, 야당의 승리가 될 것입니다.우리가 가는 길에는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하여 싸우다 앞서 죽어간 선배들의 영혼의 돌보심이 있을 것입니다.
1974년 7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