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박 대통령이 왜 마음을 바꾸었는지 지금도 알지 못한다. 회담을 하던 때 박 대통령이 속임수를 썼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김 총재, 민주주의 합시다"라는 말은 결코 건성으로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날 박 대통령은 민주주의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솔직하게 털어놓기까지 했다.예를 들어 국민은 이중 인격자나 거짓 애국자를 구분하지 못하고 선동이나 속임수에 현혹되어 표를 주는 것이 문제라면서 자격이 있고 정직한 사람이 뽑히는 그런 선거가 되도록 해야 하는데 그것이 어렵다. 민주주의는 해야 하는데 국민 수준이 민주주의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해, 민주주의는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발전해 가는 것이 아니겠냐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자신이 물러난 이후의 공화당 지도부와 연관시켜 공화당 간부와 측근 막료들의 인물평을 하기도 했다. 개헌과 관련한 대통령의 말은 꾸밈 같은 것은 없었다.박 대통령의 정치는 독재를 하고 독선도 심했지만 경제 개발에 대한 집념은 평가할 만했다. 나는 그 분의 애국심을 믿었고 신의를 존중하는 강직한 인물로 평가했다. 내가 박 대통령을 반대한 것은 그의 정치지 인간은 아니었다.
이 점은 박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박 대통령은 야당에 대한 인물평을 자주 말했는데 나에 대해서는 고집 불통의 반대자라면서도 인간적인 면은 좋게 평가하더라는 걸 여러 사람한테서 전해 들었다. 나와 박 대통령은 정치적으로는 대립하고 대결했지만 인간적인 신뢰는 가지고 있었다. 청와대 회담 후 나나 박 대통령이나 신뢰를 지켰다. 회담 내용은 내게서도 청와대에서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우리 당 간부들은 내가 말을 안하니까 궁금해하더니 나중에는 불평하고 의심하는 사람도 있었다. 대통령은 합의한 몇 가지 일을 소리없이 실천했다. 정부와 여당도 한결 부드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