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기록관 홈페이지로 이동합니다
비공개 약속, 10년 이상 지켜


비공개 약속, 10년 이상 지켜


    1975년 5월 하순 나는 박 대통령과 회담했다. 밀고 밀치던 개헌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가 있어서 한 회담은 아니었다. 그랬는데 이 회담에서 둘만의 약속이 있었고, 나는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면서도 약속을 지켰다.근 10년이 지나서야 나는 마음의 부담없이 회담 내용을 공개할 수 있었지만 여러 해를 두고 일반의 궁금증과 억측과 오해가 많았던 문제이니 이 기회에 좀 소상히 밝힐까 한다.

    내가 대통령과 회담하기로 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번째는 아시아의 정세 변화다. 그해 4월 캄보디아는 공산군이 수도까지 진입해 우파 정부를 무너뜨렸고 잇따라 자유월남 정부도 월맹군과 베트콩에 항복했다. 인도지나 반도의 공산화가 한국 안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었지만 심리적으로는 우리 국민을 다소 불안하게 하고 긴장시켰다.

    둘째는 개헌 운동에 대한 탄압이었다. 정부는 국민 투표 결과를 기초로 해 긴급 조치 9호로 유신 헌법 논의를 금지했다. 야당과 재야 민주단체와 학생들의 개헌 운동은 긴급 조치 9호에 걸려 국내 신문 방송에는 단 한 줄도 보도되지 않은 채 희생만 늘어났다.

    셋째는 당내 분위기다. 의원들은 지쳐 있었고 대화를 희망했다.박 대통령과 회담하던 날 나는 먼저 조문을 했다.

    "작년에 육 여사께서 불의의 변을 당해 무어라 위로의 말을 드릴지 모르겠습니다. 기회가 없어 진작 조의를 표하지 못했습니다."

    "인사를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처가 없으니 큰 집이 꼭 절간같이 느껴집니다"

    라고 답례하는 박 대통령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박 대통령은 창 밖의 단풍나무에 앉은 새를 쳐다보면서 "차라리 저 새가 행복해 보입니다. 처가 죽고 난 뒤 인생이 허무하다고 할까. 그런 생각을 느끼게 됩니다" 라며 손수건을 꺼내 눈언저리를 닦았다.

    나는 공식 행사장에서 몇 차례 육 여사를 본 일이 있었는데 세상의 평판과 마찬가지로 소박하고 조용한 분위기를 풍겨 좋은 인상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대통령의 슬픔이 더욱 아프게 가슴에 닿았다.

    잠시 침묵했다가 내가 방문 목적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유신 헌법으로는 정치 안정을 이룰 수 없다는 점을 설명하고 민주화에 대한 나의 구상을 설명했다. 박 대통령은 조용히 얘기를 들었다. 그러더니 일어나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조그만 지도 상황판을 들고 왔다.

    "김 총재 잘 오셨습니다. 평소 이러한 안보 상황은 야당 총재에게 상세히 설명을 드렸어야 하는 건데 … 군사면은 제가 좀더 잘 아니까 설명 드리지요."

    대통령은 남북간의 군비 비교, 전력 배치 상황 그리고 몇 차례 충돌할 뻔했던 일이 있었다고 그 사례를 얘기했다. 그러면서 지금도 군사적으로 상당히 위험한 상황이라고 결론을 내리면서 국가적 위기에 처해 초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나는 안보 상황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군사면은 내가 몰랐던 일도 많았고 우리는 실감하지 못했던 위기가 있었다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이 점은 느낀 그대로를 대통령에게 말했다. 그런 뒤     "대통령께서도 안보를 강조하고 계시지만 안보의 첩경은 민주화입니다. 월남 사태만 보더라도 민주주의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치 혼란을 겪고 끝내 패망했습니다. 진정으로 국민이 단합하는 길은 민주화를 통해 정부가 국민의 신임을 얻는 일입니다. 유신 헌법은 고쳐야 합니다. 힘으로 누르는 것은 나라가 불행해지는 일입니다."

    "김 총재, 민주주의 합시다"

    대통령은 '김 총재'라고 불러놓고 잠시 침묵해 있더니
    "김 총재! 나 욕심 없는 사람입니다. 여편네는 공산당에 총맞아 죽고 이런 절간 같은 데서 죽기 살기로 오래 앉아 있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어요. 김 총재도 나중에 정권을 잡아보면 알겠지만 이거 참 머리가 아픈 자리입니다. 대통령이란 보통 힘드는 게 아닙니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은 육 여사의 죽음 이후에 느끼는 허무감을 되풀이해 말하면서
    "김 총재, 나를 믿으십시오. 민주주의는 꼭할 것입니다. 우리 민주주의 합시다."
    그리고는 또 잠시 뜸을 들이더니
    "그런데 말입니다. 김 총재도 잘 아시다시피 사람들이 문제가 있어요. 권력을 내놓겠다든가 내놓을 기미만 보이면 새로 권력을 잡게 될 사람 주변으로 몰려들어요. 그러다 보면 도대체 지도력이 서지 않고 행정 계통까지 말을 듣지 않아요. 능률적인 통치에 큰 지장이 온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김 총재! 이 얘기는 우리끼리 한 얘기로 그칩시다. 밖으로 나가면 좋지 않지요"
    라고 했다. 박 대통령의 말은 유신 1기의 6년 임기를 끝낼 때쯤 개헌하겠다는 뜻이었다. 오늘은 우리끼리의 얘기로 하자는 대통령의 뜻을 받아들이면서 나는 민주주의 하겠다는 박 대통령의 의지를 믿겠다고 했더니 대통령은 "이 문제는 시간이 있으니 뒤에 또 얘기합시다"
     라고 했다. 헌법 논의가 잘 풀려 다른 현안 문제는 한결 좋은 분위기에서 의견을 나누었다.당시 정부의 압력으로 기업들이 동아일보에 광고를 중지했던 이른바 동아 광고 사태 진행중이었다.동아일보 광고 사태를 내가 제기했다.

    "동아일보는 오랜 전통이 있는 민족지입니다. 국민들은 동아일보를 탄압하는 일이 자기 자신을 탄압하는 일로 느끼고 있을 정도입니다. 이러한 광고 탄압은 대통령께나 공화당 정권에도 득이 될 것이 없습니다. 이제 광고 탄압을 중지해 모든 것을 정상화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박 대통령은 다소 상기된 얼굴로 동아일보에 대한 불만스런 점을 얘기했다.

    "동아일보는 기어이 폐간시킬 작정입니까?"
    "아니, 그렇지는 않습니다. 한번쯤 정신차리도록 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광고 사태를 중지해 달라는 요청이 동아일보 쪽에서도 나오지 않고 있어요. 정계에서나 업계 쪽에서도 무슨 얘기가 있을 법한데 … 광고 사태를 풀어달라는 것은 김 총재가 처음이군요."
    그러더니 박 대통령은 신문 쪽이나 기타 다른 곳의 중재를 거쳐 가까운 시일 안에 적절히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암시를 주었다.

    나는 김대중 씨 문제를 제기했다.

    "김대중 씨를 연금하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라고 했더니 대통령은 단호하게 안된다고 말했다. 남북연방제에 대한 김대중 씨의 발언, 김대중 씨 후원세력으로 조직된 한민통(韓民統)과 조총련과의 관계 그리고 미국에게 한국에 대한 군사 원조를 중단하라고 한 발언을 꼬치꼬치 들먹이면서 반정부 활동을 한 것이 아니고 반국가 활동을 했다고 주장했다.

    내가 반론을 폈지만 대통령은 막무가내였다. 나는
    "납치나 연금이나 모두 법에도 없는 일입니다.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해 주어야 합니다"
    라고 했지만 대통령은 아무 말을 안했다. 나는 유신 직후 구속된 네 명의 전직 야당 의원 중 석방이 안 되고 있는 김한수 씨 석방을 부탁했다.

    "그는 용공분자로 반공법 위반 사건 때문이 아닙니까."
    "김 의원은 공산주의자가 아닙니다. 제가 보증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중에 법무장관을 불러 알아보고 적절히 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