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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과 시련을 떠맡게 된 승리


고난과 시련을 떠맡게 된 승리


    그러나 나는 승리를 낙관했다. 내가 그런 판단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민심이다. 신민당 대회가 가까와지면서 시민의 관심이 높아졌다. 시민들 사이에서 신민당 당권 경쟁이 화제가 되고 신문 방송의 보도도 활발해지면서 대의원들도 활기를 되찾고 있었다.8월 22일 신민당 전당대회가 열리던 날 대회장인 명동 예술극장 앞에는 많은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나를 지지했다. 신민당의 야당성을 회복시키고 유신 정권과 맞서 싸울 사람은 김영삼뿐이라는 것이 이들 시민들의 믿음이었다.나는 이 대회에서 승리했다. 내가 이길 수 있었던 것은 국민의 기대가 내게로 쏠렸기 때문이다. 나의 당선에 대한 신문의 보도나 논평은 한결같이 신민당의 새로운 출발이라고 했다.

    이번의 신민당 당권 경쟁은 참여하의 점진적 개혁이라는 유진산 노선의 계승파와 민주 회복을 위한 가능한 모든 방법을 총동원하는 투쟁을 내건 개혁파인 김영삼 씨의 대결이었다. 따라서 신민당 대회가 김영삼 씨를 총재로 선택한 것은 새로운 야당, 새로운 대여 자세 나아가 유신 체제에 대한 도전과 대결을 요청하는 야당 대의원들의 강렬한 야당성 회복 의지의 표시다. 더욱이 40대인 김영삼 씨의 당권 획득은 야당다운 야당의 출현이라는 국민의 여망과 함께 젊은 야당을 출발시킨 것이기도 하다. 이런 의미에서 신민당은 그 동안의 침체와 무기력에서 벗어나 발랄한 정당으로 발전해야 한다. 그러나 앞길은 고난과 시련이 기다리고 있다.

    당시 신문 논평의 중심은 대충 이런 요지였다.

    1974년의 신민당 전당대회는 오래 간직할 만한 두가지 자랑거리를 남겼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첫째는 노선 경쟁이다. 그 이전까지 야당의 당권 경쟁은 파벌세가 승패를 가르는 주된 역할을 했다. 1974년 대회는 노선 경쟁이었다. 유신 체제에 적절히 타협하면서 야당의 힘을 비축하고 기회를 기다릴 것인가. 잘못된 지도 노선을 청산하고 당장 민주 회복에 모든 힘을 집중할 것인가가 쟁점이 되었다.

    둘째는 국민의 관심이다. 유신 체제가 성립된 전과 후의 수년간 야당은 국민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런 국민들이 1974년 신민당 전당대회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신민당이 야당성을 회복하리라는 희망 때문이었다. 국민의 신민당에 대한 관심은 신민당이 하기에 따라서는 국민의 믿음을 회복할 가능성이었다. 나는 국민의 성원이라는 영광과 함께 국민의 기대라는 엄청나게 무거운 짐을 졌다.

    나는 총재 수락 연설에서 오늘 이 승리는 나 개인의 승리가 아니라 국민의 승리, 민주주의의 승리, 민권의 승리라고 선언했다. 나와 유신 체제와의 숙명의 대결은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