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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석상서 유신 헌법 비판


공개석상서 유신 헌법 비판


    "야당의 김영삼 시대는 거친 투쟁을 특징으로 한다."

    신문의 이런 표현대로 나의 야당 총재 시절은 참말로 험난했다. 이것은 내 탓이 아니라 유신 체제하에서 야당 총재를 맡았기 때문이다. 내가 신민당 총재 경선에 나선 것은 1974년 여름인데, 정치 상황도 조건도 다 불리한 것뿐이었다.유신 헌법이라는 게 소위 3천 명의 국민회의 대의원이 대통령을 뽑는 제도, 다시 말해 박 대통령이 종신 집권할 수 있는 장치와 1개 선거구에 2명 뽑는 국회 선거제도라는 두가지 특징이 있었다. 야당이 집권한다는 것은 어림없는 일이니 고분고분해지라는 것. 그렇게만 하면 국회의원은 여당과 사이좋게 동반 당선하는 것도 보장한다는 것이다.

    박 정권은 이 두 가지 장치로 야당 의원들을 위협하고 회유했다. 국회는 해산되고, 정치활동도 금지 당하고, 지도부는 연금당해 있고, 계엄령은 서슬이 퍼렇고, 이런 고립된 상태에서 야당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회유에 넘어갔다.유신 헌법 국민 투표 때 계몽반에 참가하기로 하고 국회의원에 입후보할 때는 당선된 후 유신 헌법 반대 투쟁을 안하겠다는 약속도 했다고 했다. 정치 활동이 재개된 뒤 유진산 총재는 유신 헌법은 반대한다면서도 반대 투쟁은 하지 않았다.나는 국회로 복귀한 뒤 국회 본회의 연설이나 외신 회견을 통해 유신 헌법을 비판했다. 나는 외신 기자 클럽 연설에서 "유신 헌법은 선거를 통한 정권 교체를 사실상 막아버렸고 모든 권력이 대통령 한 사람에게 집중되도록 했기 때문에 민주 헌법이 아니다. 역사의 죄인은 영원한 죄인이 된다는 역사의 가르침을 박 정권이 알아야 한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외쳐봐도 소용이 없었다. 소위 헌법에 관한 논의를 금지하는 대통령 긴급 조치라는 것이 발동되어 있어서 국내 신문 방송은 내가 말한 헌법 비판을 단 한 줄도 보도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