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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 계엄, 연금 … 부끄러움


비상 계엄, 연금 … 부끄러움


    그러나 당 지도부는 이 사태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 더욱이 1972년 전당대회는 당을 둘로 갈라놓는 극단의 대립상을 드러냈다. 저마다 자기 쪽 전당대회가 합법이라고 우기고 있었다.나는 두 전당대회가 모두 하자가 있음을 인정하고 새로운 전당대회를 열도록 양쪽을 설득했다. 나는 정기 국회가 끝나면 통합 대회를 열 수 있으리란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파국이 더 일찍 왔다. 박 대통령은 전국에 비상 계엄을 선포하고 국회도 해산하고 정치 활동도 금지하는 초헌법적 조치를 내렸다. 당내 투쟁에서 그토록 억세던 사람들이 이 사태 앞에서 숨을 죽였다. 두 개로 쪼개진 절름발이 신민당의 무력함을 드러냈다.

    헌정 중단의 위험을 우리가 경고하고도 우리 스스로 경고를 무시한 결과가 되었다. 이보다 더 죄스럽고 부끄러운 일이 있을 수 없었다.헌정이 일시 중단됐다거나 연금당했다는 것보다 정치적 책임을 다하지 못한 회한에 더 괴로웠다. 무엇인가를 하지 않고는 나를 용납할 수 없는 마음이었다. 담배와 술을 끊었다. 줄담배였고 술도 밤새워 마실 수 있는 말술이었다. 연금당한 상태서 이것마저 끊는다는 것이 어려웠지만 이걸 해내야 나의 결의를 가슴에 새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연금이 풀리고도 국민들의 얼굴 대하기가 부끄러웠다. 호텔 같은 사람이 붐비는 곳은 한 동안 가지 않았다. 유신은 야당이 당하고도 국민 앞에 부끄럽기만 했던 패배였다. 그랬지만 망명자가 되지 않고 곧장 돌아온 나의 선택은 나를 구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