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9월 관훈 클럽 초청 토론에서 내가 1970년의 대통령 선거에 관한 질문을 받았다. 그때 질문이 이랬다.
"대단히 외람되지만 김 고문님(그때 내가 신민당 고문이던 때다) 이름의 한자 풀이하는 얘기를 신민당 출입 기자들한테서 들었습니다. 물을 세 번 헤엄쳐야 금빛을 만난다.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김 고문님께서는 세 번 물을 건넜나요? 만약 그랬다면 세 번의 좌절은 어떤 것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이런 요지였는데, 내가 이름 가지고 이러쿵저러쿵하는 풀이는 그거 쓸데없는 소리다. 그것하고 관계없이 내 생애에서 고통스러웠던 얘기 한두 가지 하겠다. 그리고 내가 겪었던 좌절 같은 것, 야당의 실패 이런 것들 몇 가지 얘기를 했다.
그랬더니, "1970년대 대통령 후보 경선 얘기는 안 하시는군요."
이래서 내가 벽촌으로 다니던 유세 얘기를 했다. 내가 이렇게 답변했다.
- 그때 백의종군하는 마음으로 전국 방방곡곡으로 다니면서 김대중 후보를 지원하는 연설을 했지만 참 외로울 때가 많았다. 무언고 하니 나에게는 대도시 연설회에 나갈 기회를 안 주는 것이었다. 부산 연설회에도 나에게는 기회를 주지 않았다. 정말이지 대도시 연설회에 나갈 수 없는 것이 괴로웠다. 서울 장충단공원 연설회까지도 나를 불러주지 않았다. 이것은 그때 대통령 선거 마지막 연설회였는데 마지막 연설회까지도 내게는 자리를 안 주는구나 생각하니 괴롭고 서글펐다. 그날 나는 충남 지역 벽촌을 돌았는데 맨 마지막 연설회가 아산군의 면 소재지였다. 작은 마을에서 연설을 했는데 내가 한 시간 반 동안 연설을 했다. 그 규모의 마을로는 청중이 많이 그것이 고마워서 그렇게 긴 연설을 했는지도 모른다. 연설을 끝내고 간단한 요기를 하고 시골 여관에 돌아와 잠을 청했는데 눈물이 흘렀다. 다른 때는 피곤해 눕자마자 잠이 들었는데 그날은 오래 잠들지 못했다. 많은 생각을 하고 나를 돌아보고 우리 당을 생각하고 그랬었다.
이것이 내가 겪었던 1970년이다. 그런데 이 패배가 두고두고 내게 부담을 주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그것이 당당하지 못한 듯했다. 오랜 시간이 지났으니 이제는 내가 담아 두었던 말을 할 때가 된 것같아 이 말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