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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승리, 당당한 패배


40대 승리, 당당한 패배


    그해 9월 한국의 정치 상황을 보도하기 위해 서울에 온 <뉴욕 타임즈> 기자는 내게 1971년의 대통령 선거에 나설 것인가를 물었다. 나는 그에게 '한국 야당의 대통령 후보는 유진오 총재로 내정되어 있다. 나의 목표는 다음이다' 라고 말해 주었다. 그랬는데 이 신문은 한국 특집에서 나를 박 대통령의 강력한 라이벌로 주목받고 있다고 쓰고, 박 대통령과 나의 사진을 나란히 게재했다.

    나는 그때 대통령 후보로 나설 수 있는 조건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었다. 당내외를 통틀어 상대적으로 내가 가장 나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나는 그런 판단을 했다. 나는 국내외 여론의 호응을 기대할 수 있을 듯했다. 내가 걱정한 것은 당내 반응이었다. 장유 유서(長幼有序)라는 전통적 질서가 마음에 걸렸다.지명전에 나선다는 나의 선언이 나오자 당의 중진들은 이것을 보수 질서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였다. 처음 한 동안 나한테 닥친 것은 반대가 아니라 중진들의 핍박이었다. 내가 지명전에 나설 것을 밝히고 지명 대회를 개최하기까지 꼬박 10개월이 걸렸다. 이 열 달은 당의 중진들이 나를 밀쳐내고 돌아갈 길을 찾느라 방황한 기간이고, 나는 득표운동이 아니라 우리를 막아선 장애와 싸운 기간이다.

    1970년 9월 29일 나는 지명전 2차 투표에서 김대중 씨에게 역전패했다. 나는 졌지만 당당한 패자가 되기로 했다. 나는 단상에 올라가 김대중 씨의 승리는 신민당의 승리고 나의 승리라고 했다. 나는 보수의 벽에 걸려 넘어졌지만 신민당과 우리는 보수의 벽을 뛰어넘었다는 것이 지명전을 나의 승리라고 말할 수 있었던 나의 마음이다.김대중 이철승 씨와 함께 했던 약속도 나만은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김대중 씨의 당선을 위해 거제도로, 거제도에서 무주 구천동까지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겠다고 했고, 나는 이 약속을 성실히 지켰다.

    대회를 마친 날 밤 선거본부로 돌아와 통곡하던 참모들, 조윤형 김동영 최형우 등 동지들에게 다시 밝게 다가올 내일을 열자고 위로했다. 내가 그날 여러 말을 했는데 최형우 동지가 그때 내가 한 말을 기억하고 있다가 내게 들려주었다.

    "역사 앞에 더 큰 일을 하려고 하나님이 나에게 더 큰 고통을 주셨으니 그걸 달게 받겠다. 명령에 따르자. 나는 선출된 후보를 돕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

    박찬종 의원도 그 해 경남중고교 동창회에서 아쉬워하는 동창들에게 내가 하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미국 민주당의 존 F. 케네디가 1956년의 대통령 후보 지명전에서 패배하고 1960년에 승리했는데, 1956년 패배한 뒤 한 말은 "내가 이번에 후보로 지명되었더라면 영원히 미합중국의 대통령이 못되었을 것이다"였다. 나도 지금 그렇다.40대기수론으로 불렸던 신민당의 지명전은 오래 기억에 남았고 그래서 그후로도 빈번하게 질문을 받았다. 1986년인가 <월간 조선>의 오효진 기자가 야당의 지난날의 경쟁 관계를 취재하면서 역시 1970년의 지명전 역전패를 들추어 꼬치꼬치 캐물었다. 괴로웠지만 승복했고 열성적으로 도왔다는 나의 답변을 간추려 옮긴 뒤 이렇게 썼다.

    "김영삼 씨는 약속한 대로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대통령 선거 지원 유세를 했다. 그때 그는 국민의 뜻을 읽을 줄 알았던 것이다. 만일 그가 라이벌을 돕는 데 심혈을 기울이지 않았더라면 그는 오늘날의 김영삼으로 성장해 있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