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의 관공서 건물을 짓지 않는데 유독 국회의사당만은 새로 건축한다고 필자가 갔던 9월 중순, 한창 말썽이 된 것만 보아도 독일사람들의 독일 통일에의 염원이 어느 정도인가를 짐작할 수 있었다. 라인강의 기적으로 표현되는 경제부흥으로 서독의 민주체제가 동독의 공산주의 체제보다 낫다는 것을 뚜렷하게 실증하는 국력을 배경으로 서독정부는 꾸준히 동독과의 접촉을 가져 통일에의 길로 매진하고 있다. 동독과 서독 사이의 정치적 장벽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 사이의 정신적 장벽은 무너져가고 있다. 베를린에서는 오는 크리스마스에 동서독에 갈려 사는 가족을 만나게 해주기 위해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금년 크리스마스에 약 200만 명의 가족이 만나게 될 것이라고 추산하고 있다.
동서독정부는 정치문제 이외의 다른 문제는 직접 접촉하고 해결함으로써 서서히 통일에의 길로 전진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접촉은 항상 실력있는 서독이 주도권을 쥐고 있었으며 특히 흐루시초프의 서독방문계획의 결정으로 한결 양 독일의 관계가 가까워져가고 있다. 흐루시초프가 동독에 압력을 가하여 약 1천 명의 정치범을 석방케 한 것은 동서독의 접근을 한결 촉진시킨 것으로 보였다. 동서독 정부는 63년 크리스마스 때 동서 베를린간 통행협정을 실현시켰다. 금년은 그 협정실현이 2년째로 접어든다. 동서독간에는 서신교환이나 소포교환 같은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온 일이다.
지난 8월 17일에는 바이에른주 북부의 호프지방을 거쳐 동독으로 통하는 사레교(橋) 재건을 위한 협정이 동서독 사이에 조인되었다. 이 협정의 교섭은 서독측에서는 서베를린에 사무실을 둔 동서독간 통상위탁기관의 레오볼트 소장이 맡았고 동독 측에서는 통로공단(????)의 가스바 부총재가 맡았었다. 사레교는 1945년 2차대전 때 파괴된 이래 아직 복구되지 않고 있었다. 사레교는 남방에서 베를린에 이르는 교통의 요충으로 이의 재건교섭은 10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이 건설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동독에서는 서독 쪽에 사무소를 설치하게 되는데 동독사무소에서 도망자가 나지 않도록 보장하는 조항까지 있다.
필자가 서독에 머물러 있는 며칠 동안 서독의 동독과의 접촉에 관한 여러가지 기사들이 화제를 일으키고 있었다. 지난 8월 27일 프랑크푸르트 룬도싸워지(紙)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린 일이 있다.
지난 봄 서독정부는 동독측으로부터 들어온 타협제의를 묵살했는데 그 제의란 전독일연락기관을 베를린에 설치하자는 것이며 그것이 합의되면 이를 계기로 '3개의 독일론'을 포기할 용의가 있다는 것. FDP(자유민주당)의 집행부는 지난 4월 10일 서베를린에 있는 동서독통상위탁기관을 전독(全獨)연락기관으로 개조할 것을 제의하기로 결정했으나 외무성과 CDU(기독교민주동맹)의 반대에 부딪쳐 유산되었다.
이러한 FDP의 움직임에 앞서 서독의 민간인 모씨가 동독정부의 관계당국과 접촉했다.
한편 같은 날 본에서 발행된 「의회, 정치통신」에는 동독과 접촉한 사람은 민간인이 아니라 전(前)독일문제상 멘데로서 동독부수상 슈토프와 접촉한 것 같다고 보도했다.
8월 27일에는 독일문제에 대한 FDP의 비밀문서가 신문에 보도되었다. FDP문서의 골자는 ① 독일이 두 개의 국가로서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② 재통일이 실현될 때까지 동독정권을 인정한다 ③ 할슈타인 원리를 포기한다. 특히 동유럽제국과의 관계에 있어서 이 원리를 포기한다 ④ 서독은 핵무기에의 접근을 정지하고 반공선전의 중심지로서의 베를린의 활동을 정지한다는 등 몇 가지 조항을 서독이 동독에 제안하면, 동독은 ① 울브릿드 일파와 수뇌들을 물리치고 대신 반대파를 앉힌다 ② 스탈린주의를 해소한다 ③ 정치범을 석방한다 ④ 베를린의 '벽'을 헐고 동서독간의 여행을 자유롭게 한다는 것을 동의해서 협정을 맺자는 것이었다.
1962년에 작성했다는 이 비밀문서의 내용은 현 서독연립내각에 5명의 동료를 보내고 있고 특히 전독일문제성을 맡고 있는 FDP의 것이라는 데 관심이 집중되었다.
이밖에도 에르할드 서독수상의 동독방문보도가 있는가 하면 베를린의 통행증교섭이 부진하다느니 동독에서 정치범 1천명을 석방했다느니 하는 등 여러 가지 보도가 있어 동서접촉의 기운이 높아져가고 있었다. 서독은 동독과의 접촉을 계속하면서도 동독정부를 인정하는 방향의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는 것을 철칙으로 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