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기록관 홈페이지로 이동합니다
미 국회를 찾아


미 국회를 찾아


    워싱톤에 도착한 나흘째인 6월 29일, 나는 미국 상원을 방문, 한국과 관련 있는 여러 인사들을 만나 여러가지 얘기를 나누었다. 외무위원회 극동분과위원장인 로스츠 민주당의원의 초대로 공화당의 히켄 루퍼 의원 및 역시 공화당의 칼슨 의원과 오찬을 나눈 후 로스츠 의원의 안내로 상원 본회의장을 방문했다. 로스츠 의원은 오하이오 주지사를 다섯번이나 역임한 후 상원의원에 당선된 중진이다. 그때 놀란 것은 의석에 겨우 의원이 3명밖에 앉아 있지 않았는데도 그대로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안건은 하와이주 출신 일본계인 이노우에 의원이 제안한 민간방위에 관한 법률안이었는데, 듣는 사람은 겨우 3명뿐이었으나 제안자는 열심히 제안설명을 하고 있었다. 한국 국회 같으면 신문 가십난이 온통 야단법석하기 알맞은 풍경이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보통인 모양이다. 이윽고 표결에 들어가게 되자 벨이 울렸다. 그러자 100명의 상원의원 중 약 50명이 모여들었다. 모두들 로비나 휴게실 또는 면담실에서 혹은 사무실에서 한담을 하거나 선거구민들을 만나고 있었던 모양이다.

    표결방법도 우리와는 달랐다. 개별적 호명을 해서 NO냐 YES냐를 물으면 NO 혹은 YES로 의사표시를 하는 것이었다. NO라는 의사표시에는 반드시 간단한 이유 몇 마디를 붙이는 것이었다.어떤 의원들은 뛰어들어오면서 NO 혹은 YES를 외쳤다. 문제의 사나이 골더워터는 NO였다. 이러한 절차에 의해서 민간방위에 관한 법률안은 찬성 47표 반대 4표로 통과되었다. 이 법안의 통과선포가 있은 후 로스츠 의원이 나에 대한 간단한 소개연설을 했다. 소개가 끝나고 내가 기립하여 그들에게 경의를 표했다. 전원이 아낌없는 박수로 환영해주는 것이었다. 여태까지 국회의원생활을 해오면서 가장 흐뭇하게 느낀 순간의 하나였다. 곧 이어 약 40명의 의원과 인사를 나누면서 악수를 교환했다.

    이튿날 30일에는 하원을 방문했는데 하원에서도 460명 중 약 30명 정도의 출석으로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하원에서는 군사위원인 블레어 의원과 약 1시간 동안 극동의 군사문제에 관하여 의사를 교환한 뒤 외무위원 모르간 의원을 비롯한 7, 8명의 여야 외무위원들과 외무위원장실에서 한국의 현실과 군사원조 및 경제원조문제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그들은 한국의 감군문제와 한일회담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

    미 의회를 방문하고 느낀 것은 미국의 국회의원들은 입법활동이나 정책연구를 할 수 있도록 시설과 분위기가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국회의원들 개개인이 모두 의사당 안에 자기 사무실을 갖고 있었으며 국회의원들을 위해 마련해놓은 세계 최대의 규모와 최고의 권위를 가진 도서관이 있다. 하긴 뉴 올린즈 시의회에까지도 의원마다 사무실을 갖고 있었으니 한국의 국회의원은 미국의 시의원 대접도 못 받는 셈이다.

    사실 한국에서는 국회의원 세비 4만 6천 원이 너무 많다고 시비가 있었지만, 그 세비 가지고 미국에 가면 구호대상자가 된다. 미국에는 연 소득 3천불 미만이면 정부의 구호대상자가 되는 것이다. 물론 미국과 우리 나라 살림살이 형편이 다르니까 서로 비길 바는 못 되지만 우리 형편으로 의사당 안에 개인 사무실을 갖지는 못할지언정 충실한 도서관이라도 제대로 만들어놓고 의원들이 공부하고 연구를 하면서 입법활동을 할 수 있게 되어야겠다.

    미국에서도 선거구민들이 더러 의원들을 찾아오기도 하는 모양이지만 한국처럼 많은 시간을 그들에게 소비하지는 않는 것 같다. 미 국회의사당 안에 넓은 면담실이 있는데, 선거구민들은 주로 그곳에서 만나는 것이다. 만나더라도 얘기 도중에 표결 벨이 울리면 그대로 헤어지는 것이었다. 사무실에는 잘 찾아가지 않게 되어 있는 것 같았다. 면담실에서 만나는 것도 사전 약속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선거구민들이 의원의 가정을 방문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미국이라는 사회는 초대를 받은 경우가 아니면 남의 가정을 방문하지 않게 되어 있다. 우리나라같이 새벽이고 밤중이고 가리지 않고 밀고 들어가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미국 국회는 민주주의의 성지로서 존엄성을 유지하고 있다. 의사당의 건물부터 위엄이 있었지만 그 속에서 일하는 국회의원들의 권위도 대단하다. 국민도 국회를 국가의 상징으로 우러러보는 것이다. 신문에서도 좀처럼 국회를 공격하지 않는다. 내가 상원에 갔을 때 의석에는 3명의 의원밖에 앉아 있지 않아도 신문에서 문제삼지 않았다. 정치의 중심이 국회를 떠나버렸던 때에 조국을 떠나온 나는 미국 국회를 보고 느낀 바가 많았다. 우리나라 국회는 그 구성분자들이 욕먹을 일을 너무 많이 하지만 지나칠 정도로 매스컴의 비판이 국회에 집중되는 인상 또한 사실이 아닐까? 그러한 과잉비판이 국회의 권위와 위신을 떨어뜨려 국민들 속에 국회 무가치론을 불러일으킬 위험성이 있는 것이다. 국회 스스로가 먼저 비판받을 일을 삼가며 체신을 지켜야 하겠지만 매스컴도 국회를 육성하는 범위 내에서 비판해야 한다고 생각되었다. 잘나도 우리국회요, 못나도 우리국회인 것이다. 국회무용론이 대두되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는 것이다. 우리는 국회가 없는 3년간 국회를 통한 대의정치의 소중함을 얼마나 뼈아프게 느꼈던가? 우리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다시는 헌정을 중단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 궁극에 가서는 헌정중단을 초래할 위험이 있는 국회비하 경향은 철저히 경계해야 될 것이다. 우리는 군정 3년 동안 쿠데타가 국가 발전에 백해무익했다는 엄숙한 결론을 체득하고도 남음이 있지 않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