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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대로 후손에 물려줄 수야(서문에 대신하여)


- 이대로 후손에 물려줄 수야(서문에 대신하여)


    6.3사태로 조국은 또 한번 커다란 시련을 겪었다. 3년간의 군사통치가 끝나고 제3공화국의 민정이 탄생된 지 겨우 반 년만에 다시 학생데모의 악화로 계엄령이 선포되고 대의정치는 다시금 중단되는 비극이 연출되었다. 정치활동은 사실상 발을 묶이고 정치권력의 핵은 국회를 떠나가 버렸다. 그러한 긴박하고 불투명한 정치 분위기가 중압하던 무렵, 그러니까 1964년 6월 15일, 나는 미국무성의 초청으로 미국 시찰여행을 떠났다. 나의 여행은 6.3사태 훨씬 이전에 초청되고 준비된 것이었으나 정치적으로 다시금 대의정치가 중단되고 그 앞날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어려운 시기에 한 야당의 정치인으로서 현실도피적 외국여행을 떠나서 되겠느냐는 자책으로 주저하기도 했으나 차라리 이 기회에 넓은 세계를 둘러보고 견문과 지혜를 넓혀 새로이 조국에 봉사하는 길이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에서 기어코 떠났던 것이다.

    6월 15일 하오 「정치의 광장」을 읽고 저마다 우수에 찬 얼굴들을 한 동료국회의원들, 그리고 그밖에 나를 아껴주는 많은 인사들의 따뜻한 환송을 받으면서 김포공항을 떠난 나는 그로부터 120일간 일본, 미국, 영국, 프랑스, 덴마크, 서독, 스위스, 이탈리아, 인도, 타일랜드, 필리핀, 홍콩, 대만, 다시 일본의 차례로 서울에서 베를린까지 동서로 연결하는 중요 우방들을 순방하면서 남들이 잘 살며 발전해 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왜 우리는 못 사는가?' 하며 안타까워 혼자 울기도 해보고 자책도 해보았다. 그러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잘 살수 있을까?'를 조용히 생각해볼 기회를 가졌었다. 먼 이국땅에서 조국을 바라볼 때면 흔히 감상적으로 기울어지기 쉽지만 한편으로는 보다 넓은 시야에서 보다 냉철한 심경으로 조국의 있는 그대로를 관찰하고 장래를 모색해볼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짧은 시일에 너무 여러 곳을 다녔기에 사실 '겉핥기 여행에 겉핥기 관찰'이 됐을지 모른다. 그러나 정계의 한 모퉁이를 더럽히는 사람으로서 귀중한 시기에 자리를 비웠다는 책임감도 있고 해서 그동안 여행에서 보고 느낀 점을 혼자 머리 속에 담아 두고 있어서는 안되겠다고 감히 붓을 들었다. 보고 느낀 일들을 그대로 조국에 알리고, 보다 잘 살 수 있는 길을 다같이 모색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하나의 사명감에서 이 글을 쓰는 것이다.

    내가 가 본 나라들은 모두가 잘 살고 있었다. 인도를 빼놓고는 모두가 우리보다 나은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번 여행에 있어서 가장 집약적인 인상은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잘 살며, 유럽은 미국에 비해 너무 가난하며, 일본은 유럽에 비해 너무 가난하며, 한국은 일본에 비해 너무 가난하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나의 결론은 '미국이 잘 살고 유럽이, 일본이 우리보다 잘 살아도 우리가 기댈 언덕은 없었다'는 데로 귀착시킬 수밖에 없었다.

    우리를 원조하고 있는 미국은 여전히 사상 최고의 번영을 누리고 있지만 언젠가는 우리에 대한 원조를 끊으려 하고 있고 그밖에 자유세계의 여러 나라들은 모두가 약삭빠른 실리에만 눈이 어두워 있다. 우리는 그 어느 누구에게도 기댈 생각을 말고 우리 스스로가 살 길을 찾아야 되겠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것이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용기를 잃지 말고 이를 악물고 일어서서 경제력을 향상시키고 정치의 능력을 길러 공산주의에 이겨나가야 하겠다.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여건 하에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약점을 많이 지니고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결코 희망이 없는 나라가 아니며, 능력이 없는 국민이 아니라는 것도 아울러 알았다. 다만 오늘의 시점이 안일하게 있을 때가 아니라는 문제의식을 잊어버리고 패배의식에 사로잡히거나 용기를 잃고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영영 오늘의 환경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각성해야 한다. 아직은 절망이 아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그러나 내일이면 늦다. 잿더미 위에서 라인강의 기적을 만들어낸 독일 사람을 보라! 그들은 아직도 남보다 적게 먹고, 남보다 나쁜 옷을 입고, 남보다 많이 일하고 있었다.

    그들은 말한다. 라인강의 기적이 기적이 아니라고, 그들의 끈기 있는 노력과 줄기찬 의지의 당연한 결과라고……. 그들은 오늘의 번영을 이룩하고도 그들의 생활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오늘의 우리에게 이러한 독일사람들의 강렬한 의지와 행동하는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왜 못 사는가?'의 원인을 냉정히 반성하고 그 반성의 새로운 바탕 위에서 보다 잘 살 수 있는 조국의 건설로 향한 굳은 의지와 행동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것이다. '우리는 이 나라를 떠나 살 수 없으며, 이 나라는 우리만이 살다 죽을 땅이 아니다.' 우리의 자손만대에 물려줄 땅이다.

    세계에는 훌륭한 조상들의 훌륭한 문화와 훌륭한 전통을 이어받아 잘 사는 나라들이 많았다. 파리에서, 런던에서, 로마에서 그러한 위대한 조상들의 웅대한 문화와 장한 전통을 보고 나는 느낀 바가 많았다. 우리는 그것이 없다. 나는 파리의 루블 박물관이나 베르사유궁전 같은 위대한 문화의 유산을 볼 때나 로마제국이 남긴 웅장한 성곽들을 볼 때마다 우리 조상들은 무엇을 했는가 하고 자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들도 신라의 불교문화의 유적이 있고 고려자기 같은 자랑거리가 있지만 이것은 너무나 빈약하다. 우리 조상들은 길이 이어받을 만한 전통도 세워놓지 못하였고 세계에 자랑할 만한 문화도 남겨 놓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와서 조상을 원망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우리들이라도 자손만대에 무엇인가 남겨줘야 되겠다는 자각이 앞서는 것이다.

    오늘날 이 땅에 생을 누리는 우리들마저 이대로 죽을 수는 없는 것이다. 유럽의 위대한 선조들이 남긴 것들을 우리 자손들에게 남겨주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적어도 오늘의 세계최악이라 할 수 있는 빈곤의 역사를 그대로 넘겨줄 수는 없는 것이다. 이 빈곤과 굴종의 역사를 이제는 더 우리의 '전통'으로 되풀이하지 않도록 분발해야 되겠다는 것을 우리 젊은 세대에 호소하는 것이다. 남과 같이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 자손에 물려주는 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의 지상의 사명인 것이다. 더욱이 급격하게 변화하는 국제정세는 우리들로 하여금 촌각의 머뭇거림도 허용하지 않는다. 낙후와 의타의 역사에서 벗어나 자립, 자주와 번영에의 내일을 위한 '뜀틀'을 하루속히 마련해야 하는 사명이 우리들의 어깨에 다같이 지워져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여행에서 돌아오니 다행히 계엄령이 해제되고 국회의 기능은 형식상으로는 회복돼 있었다. 그러나 정치풍토는 더욱 거칠어져 있었다. 언론파동으로 인한 정계의 분열경향은 더욱 심해진 느낌이었고 급격한 국제정세의 변화로 인한 국민들의 불안과 초조는 한결 가중돼 있었다. 여기서 느낀 바 있어 이 책을 내기로 결심을 했다. 내가 이번 여행에서 보고 느낀 바를 그대로 오늘의 국민 앞에 보고함으로써 미약하나마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찍이 전문적 문필가들이 세계여행기를 많이 발표한 바 있으므로 나는 평면적인 견문의 전달을 피하고 정치적인 각도에서 그때 그때 적어 모은 것들을 종합정리해서 발표하는 것이다. 보잘것없는 글이지만 독자들에게 '오늘의 세계와 그 속의 한국'을 이해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다행이겠다.

    끝으로 나를 미국으로 초청해준 미 국무성에 감사드리며 여행중이나 그밖에 여러 모로 친절을 베풀어준 여러 나라의 인사들의 호의에 대해 심심한 사의를 표해 마지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