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당은 1959년 3대 국회 초에 이승만 대통령의 3기 집권을 위한 개헌을 추진했다. 25세의 초선의원이던 나는 이대통령을 지지했지만 연임제한 조항을 철폐하는 개헌을 해서 장기 집권을 하는데는 찬성할 수 없었다.
그럴 때인데, 이기붕 국회의장이 나와 김철안, 김상도 세 의원을 경무대로 안내했다. 우리들 세 명의 초선의원에게 대통령을 면담할 기회를 주고, 대통령의 특별한 격려의 말씀을 들려주기 위한 자리였다.
나는 일생을 조국 광복에 몸 바친 이대통령을 존경했다. 이대통령은 독립지사요 건국의 아버지로서 온 국민의 추앙을 받고 있었고, 우리들 젊은이의 우상이기도 했다. 나는 이같은 국민의 사랑을 영원히 간직하는 것이 대통령이나 우리 민족을 위해 유익하다고 생각했는데, 장기 집권을 위한 개헌을 한다니 안타까웠다.
존경하는 분과의 첫 대면이어서 망설였지만 달리 기회를 얻기도 어려울 듯해 나의 이런 생각을 말씀드리고 개헌을 하지 말라고 건의했다.
"국부(國父)로 존경받고 있는 박사님께서는 이번 임기로 대통령을 끝내셔야 민족의 영원한 대통령으로 남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은 아무 말 없이 자리를 나가 버리셨다. 그때 대통령의 안면 근육이 경련했는데 이것은 노여워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했다. 함께 갔던 두 의원은 하얗게 질렸고 나도 무례하지 않았나 하는 후회로 당황했다.
이의장은 몹시 화가 나, "김의원 돌았어? 어쩌자고 그런 말씀을 드려" 라고 나를 나무랐다.
자유당이 개헌을 공식으로 추진하던 때, 당 간부들은 개헌을 찬성하라는 권유를 많이 했다. 나는 이대통령은 반대하지 않았지만 역시 개헌은 찬성할 수 없었다. 대학 동문이기도 한 현석호, 한동석 의원도 개헌은 반대했다. 우리 세 사람은 은밀하게 개헌을 반대하는 당내 동조자 포섭 활동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