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여인으로 대하는 사람은 아마도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어머니는 여인을 초월한 개념이다. 이 말이 여인을 어머니란 굴레 속에 가두어보려는 보수주의적인 생각이라고 하여 지탄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내게 박힌 고정관념임을 고백치 않을 수 없다.
우리들이 자랄 때 우리들 어머니의 손은 크고 손가락은 마디가 굵었다. 그래서 우리의 등이 가려울 때 어머니는 긁는다기보다는 마디 굵은 손으로 쓰다듬어주기만 하면 되었던 것이다. 그 꺼칠꺼칠한 손바닥에서 우리들의 가려움증은 저절로 멎었던 것이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찾아오기만 해도 행주치마 속에 굵은 손을 감춘 채 부끄러움 탔던 어머니들인 것이다. 그 어머니들은 또한 누가 한사람 손님이라도 찾아오면, 무엇 하나라도 먹여 보내려고 애쓰셨다. 조그마한 친구들이 내 어머니를 누구의 어머니로서보다는 우리 모두의 어머니로 치부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밖에서 무슨 일을 당하여 어머니 무릎에 대고 실컷 하소연이나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게 하는 그런 어머니의 초상(肖像)은 점차 없어져 가는 것 같다. 나는 이것을 어머니의 상실, 또는 모성(母性)의 상실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들의 어머니는 자식과 자식들의 친구들에게 당신이 손수 장만한 음식을 주기를 좋아하셨다. 어머니들은 본시 남을 즐겁게 해주는 것을 천직(天職)으로 알았다. 당신이 주신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것을 보고 보람을 느꼈다. 밥상에 올렸던 밥이 남겨져 상물림 되는 것을 가장 싫어하셨던 기억을 나는 지금도 가지고 있다. 주는 것을 맛있게 다 먹는 내 친구를 어머니는 더 좋아하셨다. 남편에게나 아이들에게나 어머니는 희생 그 자체였다. 한 알의 밀알이 썩어 수확을 남기는 일, 그것이 바로 우리들 어머니들의 일생이었고, 또 기쁨이었던 것이다.
흔히 미풍양속(美風良俗)을 말한다. 옛날의 아름다운 풍속이 없어지는 사태와 관련하여 이런 말들이 나오는 것이다. 나는 옛날의 아름다운 풍정(風情)의 밑바탕은 어머니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한다. 흔히 집안이 화목하려면 부인네들이 화목해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나는 이것은 옳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서로 헐뜯지 않는 마음, 그것은 바로 어머니로부터 나온다. 어머니의 모든 것은 자신보다는 남을 향하는 것이다.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인 것이다.
내 어머니는 몸도 건장하셨을 뿐만 아니라 건강도 좋으셨다. 또 남자들이 하는 일도 거침없이 해냈다. 그런데 어머니의 그러한 일들이 대개는 남을 괴롭히지 않고, 남에게 일을 떠맡기지 않으려는 심성에서부터 저절로 나오는 것임을 나는 알고 있다. 궂은 일이면 궂은 일일수록 남 아닌 자신이 떠맡으려 하는 마음, 그것이 어머니의 마음인 것이다. 나는 나 자신 어머니가 계시지 않은 것을 못내 안타까워 하지만, 이에 못지 않게 이런 어머니의 마음이 세월 속에서 사라져가는 것을 또한 안타깝게 생각한다.
어머니의 회복, 모성의 회복이야말로 우리들의 메마른 가슴에 절실한 것임을 나는 확인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