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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거산이라는 아호
4. 거산이라는 아호



    사람들은 내 아호(雅號)가 거산(巨山)이라는 데 대하여, 너무 거창하다느니, 혹은 너무 크다느니 하는 말들을 한다. 아마도 그것의 유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더욱 그럴 것이다.

    나는 본시 아호같은 것을 가지리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리고 호(號) 같은 것이 내게 어울린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다. 정가(政街)에 나온 이래, 많은 사람들이 내 아호를 지어주셨다. 내가 만약 아호를 쓰기 좋아했다면 지어주는 사람이 많은 만큼, 많은 내 아호를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한번도 써 본 일이 없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서도라는 것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서도에는 무엇인가 호 같은 것을 쓰기는 써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고, 이때 마침 서도하는 분이 거산이라는 아호를 지어주었다. 나는 그 이름이 너무 크고, 또 그 의미가 너무 직정적(直情的)이어서 사용코자 하지 아니하여 사양하였다.

    그런데 거산이라는 것은 고향인 거제의 거(巨)자와, 정치적 고향이라 할 부산의 산(山) 자를 따서 지었다는 것으로, 고향의 이름자를 따서 아호를 사용하는 일이 옛날 중국과 한국의 선대(先代)에 많으니 굳이 사양할 이유가 없다 하여 그대로 쓰게 된 것이다. 내가 내 아호를 쓰거나 사용할 때 느끼는 것은 그 거창한 의미보다는 고향과 우정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거산이라는 지어준 호를 사용치 않는다는 것이, 그것을 지어준 사람의 호의를 저버리는 것임은 물론, 자칫 고향을 저버리는 것이라고 여겨질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를 나는 한 바 있었다. 내가 거산이라는 아호를 사용함으로 해서, 내 고향 거제는 지금도 나와 붙어 다니고 있는 셈이다. 내 아호에 고향의 의미가 없는 것이라면 나는 그것을 결코 쓰지 않았을 것이다. 또 나는 붓글씨를 쓸 때 이외에는 아호를 결코 쓰지 않는다.

    나는 내 고향이 개발이 되지 않고 낙후되어 있다는 사실을 앞서 말한 바 있다. 그러나 50여년을 두고 변하지 않은 내 고향이기에 나는 거기를 더욱 사랑한다. 거기에는 지금도 나를 '영삼(泳三)이'하고 맞아주는 손이 무척이나 큰 친구들이 지금도 살고 있다. 한가지 재미있는 일은, 내가 소학교에 다닐 때, 우리 반에는 60여명이 있었는데, 여학생들이 6-7명이 있었다. 나는 남자아이들이 짓궂게 굴어서 결국은 중도에 그만두어 졸업을 못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데, 졸업한 여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생각해보면 짓궂게 굴었다는 한가지 이유만으로 그들이 모두 졸업을 못하고 중도에 그만둔 것은 아닐 것이다. 나 역시 짓궂게 굴었던 사람 가운데 하나인데, 나는 그녀들의 중도퇴학이 우리들 때문이 아닌가 하는 지레짐작과 미안함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내가 25살의 나이로 국회의원에 출마했을 때 제일 열렬히 선거운동을 해준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그래서 나로 하여금 죄송하고 미안하게 만들었다. 이제는 모두가 할머니들이 된 그들이지만, 지금도 만나면 괜히 돌아서 얼굴을 붉힌다. 이런 에피소드까지를 포함하여 나는 내 고향 거제를 사랑한다.

    우리 집안이 어떻게 하여 거제에 내려와 살게 되었는지는 명확치 않지만 대체로 이런 이야기들이 전해지고 있다. 이조시대에 거제도는 유배지였는데, 많은 사람들이 거제로 유배될 때 내 11대조 되시는 분의 형제 두 분이 경주에서 거제로 오셨다는 것이다. 그것이 유배인지 아닌지는 명백치 않지만, 내 생각으로는 유배였으리라고 생각한다. 만약 유배가 아니었다면, 그 떳떳한 경위가 전해 내려왔을 것인데, 그렇지 못한 것으로 보아, 유배였을 것이라는 추측이 드는 것이다. 당시에 어쨌든 유배는 떳떳한 것이 아니었을 테니까 말이다. 어쨌든 두 분은 거제도에 정착하게 되었는데 형제분이 각각 큰 닭섬(大鷄島)과 작은 닭섬(小鷄島)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그렇게 정착하여 오늘에 이어졌는데, 우리 집안은 손(孫)이 귀했다. 할아버지의 휘하에 남자로는 내 사촌이 있을 뿐이다. 결국 우리 집안이 거제로 내려온 것은 3-400년 전이다. 거제는 내 뿌리요, 내 흐르는 피의 오랜 고향인 셈이다. 일년이면 한두번 고향을 찾는데, 고향에 가면 나는 언제나 성묘를 잊지 않는다. 가까이는 할아버지 내외분, 어머니 그리고 내 백부님, 백모님의 묘소가 계신 곳이다. 또 내가 죽어 묻힐 곳도 바로 거제가 아닌가 한다. 결국 나는 거제에서 와서 거제로 가는 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