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28년 경남 거제군 장목면 외포리에서 태어났다. 내가 태어난 외포리는 거제도 중에서도
한려수도 쪽이 아니라, 태평양 쪽을 바라보고 있는 곳이다. 말하자면 앞으로 태평양 큰 바다, 큰 물결이 넘실대는, 밖은
트였으나 그러나 그 물결을 맞는 마음은 조그만 그런 어항(漁港)인 셈이다. 어항이라고 하지만, 항구라 하기에는 어쩐지 서먹서먹한
조그만 갯가 마을이라고나 할까.
지도를 보면, 유라시아 대륙이 동북에서 한반도로 쭉 뻗어내려 왔는데, 그 동남쪽의 끝에 거제도를 떨어뜨려 놓은 것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한반도의 완결 같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한반도에서 떨어져나가 바다에 버려진 것 같기도 한
섬이 바로 거제도인 것이다. 어떻게 보면 태평양쪽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을 막아주는 바람막이 같기도 하고, 거제도가 있어서
한반도의 형세가 그런대로 안정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도 한다.
언제부터 거제(巨濟)로 불리웠는지 모르지만, 그 이름 또한 예사롭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섬이란 본시 생긴 모양대로 이름을
붙이는 경우와 까치가 많이 모여 살면 까치섬이라고 하듯이 대개는 즉물적(卽物的)인 이름이 대부분인데, 하필이면 크게 건진다는
뜻의 거제란 것이 다른 섬과 다르다면 다르다 할 것이다. 거제란 섬이 그렇다는 말이지, 그 섬 이름과 나를 연결시켜 생각해본
적도 없고, 또 그럴 생각도 없다.
언젠가 나는 거제라는 섬 이름과 나와를 연결시켜보려는 취지의 질문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때 나는 애향심(愛鄕心)은 좋지만
독선의식, 또는 독존(獨尊) 사상은 좋지 않다고 대답한 일이 있다.
거제란 섬 이름과 관련하여서는 이런 일이 있었다. 6.25동란 중 미국의 신문을 봤더니 로마자로 Koje라고 해놓고서, 거지의
섬(Beggar's Island)이라는 설명을 달아 놓았길래, 그 미국의 특파원을 만나 시정을 촉구한 일이 있었다. 내가 태어난 섬이 거지의
섬이라니 그것은 당치도 않는 말이었던 것이다. 물론 우리말의 발음에서 연유한 착각이었을 것임이 분명할 터이지만, 나로서는
대단히 기분이 상했었다.
내가 태어난 외포리는 거제도 안에서도 가장 낙후한 지역이었는데,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아마도 한국 내에서 제일
낙후된 지역이 바로 거제도라고 말한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그 중에서도 내 고향 외포리는 가장 뒤떨어진 곳이다. 내가
태어난 마을은 지금도 차를 타고서는 갈 수가 없다. 도로가 없는 것이다. 육로(陸路)로 가려면 면사무소 소재지인 장목(長木)에서
20리를 걸어야 갈 수가 있다. 외포리가 바닷가라 나는 곧잘 배를 타고 가지만, 외지 사람을 내 고향에 차마 감히 초청할 수가
없다. 초청에 응해준다는 것 자체가 바로 고생길이기 때문이다. 거제도의 상대적 낙후가, 그리고 내 고향 외포리가 개발에서 제외된
것은 혹시 나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에 나는 늘 고향과 고향 사람들에게 죄의식을 지니고 있다. 내가 태어났기에 내
고향이 버려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나의 기우와 독단적인 판단만은 아니리라. 어쨌든 나는 고향에 큰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고향을 생각할 때나, 고향에 가게 될 경우에는 늘, 고향사람들이 우리 고장이 옛날 옛적이나 지금이나 다름없는 것은 너
때문이라고 윽박지르지나 않을까 하는 가벼운 조바심이 생기는 것도 어쩔 수 없는 내 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