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기록관 홈페이지로 이동합니다
넓은 세계, 밝은 미래로


넓은 세계, 밝은 미래로


    존경하는 국회의장, 그리고 국회의원 여러분 !

    저는 에이펙 정상회담과 미국 방문을 마치고 무사히 국민 여러분의 곁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번 여행은, 제가 대통령으로 취임한 후 첫번째 해외방문이었습니다. 해외여행의 목적이었던 에이펙 정상회담과 한·미 정상회담은 우리에게는 참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것이었습니다. 또한 제가 출국 성명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 국민과 제가 세계로, 미래로 나아가는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 여러분과 국회의원 여러분 앞에 그 동안의 활동과 그 성과를 보고 드리는 것이 저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아시다시피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가장 역동적인 변화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이 지역은 앞으로 세계사를 이끌어 갈 중심무대가 될 것입니다. 이 지역 열두 개 나라 정상들이 처음으로 모여,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나눈 것은, 그 자체로 역사적이고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진지한 대화를 통해 이 지역이 가지고 있는 다양성 속에서, 서로 협력하는 문제를 논의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개방과 협력을 통해 공동의 이익을 창출해내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했습니다.

    저는 발제연설에서 협력 있는 경쟁, 경쟁 속의 협력이라는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의 비전과, 우리가 다함께 추구해 나아가야 할 5 대 과제를 제시했습니다. 주제별 회의와 마무리를 통해, 에이펙이 내실 있고 개방된 경제공동체로 발전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다음번 정상회담을 내년에 인도네시아에서 열도록 한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한국이 회의의 전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함으로써, 에이펙을 통해 우리가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우리 나라는 앞으로 무역투자위원회 의장국으로서 선진국과 개도국, 나라와 나라 사이의 이견을 조정하고 중재하면서, 에이펙의 장래를 이끌어 나가야 할 책임과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번 회의를 통하여 우리 나라의 비중과 위상이 크게 높아졌다는 것을 자신 있게 보고드릴 수 있습니다.

    저는 일련의 개별 정상회담을 통하여,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간의 공조체제를 이루어 낼 수 있었습니다. 특히 중국의 강택민 주석과의 심도 깊고 의미 있는 정상회담을 통하여 한국과 중국이 이웃으로서, 아시아·태평양 시대를 열어 나가는 데 서로 협력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저는 북한이 에이펙에 참여하는 문제를 함께 검토할 수 있는 날이 하루속히 오기를 기대해 마지않습니다.

    에이펙 정상회담의 성과는 오늘내일에 나타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이번 에이펙 정상회담은 우리가 아시아·태평양 시대의 주역이 되는 데 그 바탕이 되고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우리 나라의 안전과 번영이 이루어지고 위상이 계속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을 저는 확신합니다.

    국민 여러분, 그리고 국회의원 여러분 ! 저는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통하여, 북한 핵문제에 대한 한·미 양국의 공통된 입장을 확실하게 정리했습니다.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은 물론, 남북한 사이의 상호사찰과 대화가 북한 핵문제 해결에 있어서 움직일 수 없는 선결요건이라는 점을 양국이 확인했습니다. 7 천만 민족의 생존이 걸려있는 핵 투명성의 보장이야말로, 결코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이렇게 핵 투명성이 보장된다는 전제 아래 한·미 양국은 핵문제를 최종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철저하고도 광범위한 노력’을 하기로 했습니다. 한반도 문제에 관한 한 팀스피리트 훈련 등 최종적인 결정은 한국 정부가 한다는 원칙을 확인하였습니다. 또한 북한 핵문제의 해결이 더 이상 지체될 수 없다는 점에도 의견을 같이했습니다.

    북한 핵문제의 해결 없이 한반도의 평화는 없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저는 한·미 정상회담에 임했습니다. 그것만이 북한으로 하여금 핵으로 자신을 지탱하고자 하는 헛된 망상을 버리게 하는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는 북한이 고립과 폐쇄의 헛된 꿈으로부터 벗어나 개혁과 개방이라는 저 넓은 세계사의 한마당으로 나오게 하고자 하는, 저와 우리 국민의 진실이 담겨 있습니다.

    저와 클린턴 대통령은 7 월에 이어 양국간의 안보협력체제를 재확인하고, 특히 북의 어떠한 도발에도 함께 대처한다는 확고부동한 결의를 다졌습니다. 미국은 북한의 핵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주한미군의 감축이 없을 것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또한 우리는 시애틀 정상회의가 아시아·태평양 협력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습니다. 에이펙의 활성화를 바탕으로 새로운 태평양 경제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는 데 서로 협력하기로 했습니다. 경제협력 문제에 관해서도 잠시 논의가 있었습니다.

    클린턴 대통령은 금융개방과 농산물 관세화에 대한 우리의 의견을 물었습니다. 저는 UR 협정의 조속한 타결에 노력할 것이지만 나라마다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그 외에 어떤 합의도 없었다는 것을 분명히 밝힙니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우리는 전통적인 양국간의 우호관계를 다지고, 더 나아가 21 세기를 향한 새로운 차원의 한·미 동반자 관계를 형성했습니다.

    국민 여러분, 그리고 국회의원 여러분 ! 저는 이번 미국 방문을 통하여,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이 몰라보게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문민 민주주의를 이 땅에 실현해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군사정치문화를 청산하는 개혁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민 민주주의의 실현과 우리가 추진하고 있는 개혁이 한국의 위상을 결정적으로 높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NDI 로부터 ‘해리만 민주주의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저는 저 혼자만이 그 민주주의상을 수상한 것을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저는 이 상이 마침내 이 나라에 문민정부를 세운 한국 국민에게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국민과 더불어, 국민을 대표하여 상을 받았습니다.

    민주화의 긴 역정 속에서 오늘을 보지 못하고 먼저 가신 분들과 조국의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해서 싸워온 자랑스러운 동지들에게 수상의 영예를 돌려 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수상연설에서 그 동안 우리 국민이 걸어왔고, 또 함께 걸어가야 할 한국 국민과 저의 꿈에 대해서 얘기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문민정부를 이 땅에 실현하는 꿈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는 꿈, 하나된 민족이 세계 속에 우뚝 서서 인류의 진보와 평화를 인도하는 우리들의 꿈은 아직 실현되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 국민과 더불어 그 꿈을 반드시 이루어 내고야 말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국민 여러분. 이번 여행 중 미국에 거주하는 우리 동포들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따뜻한 환영은 저와 우리 일행을 그 때마다 감동시켰습니다. 문민과 개혁의 시대가 온 데 대하여 동포들은 대단한 긍지와 자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분열되었던 동포사회를 하나로 통합한 것은 바로 조국에서의 문민정부 출범과 개혁 추진이었습니다.

    저는 어둡던 시절에 동포들이 베풀어 준 조국에 대한 사랑에 감사의 뜻을 표했습니다. 우리는 눈시울을 붉히면서 조국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얘기했습니다. 그들의 총총한 눈빛 속에서 애국적 열정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우리 민족이면서 동시에 미국의 시민으로서 국제화 시대를 열어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외국 사람들에게도 한국은 문민과 개혁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에이펙 정상회담에서 각국의 지도자들은 우리가 지금 추진하고 있는 변화와 개혁을 경이와 존경의 눈길로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저는 문민 개혁의 나라 한국의 대통령으로서, 형언할 수 없는 보람과 자긍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또한 각국에서 각기 자신에게 맞는 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개혁 동지로서의 동질감이 이번 회의에 참석한 지도자 상호간의 유대와 친분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문민과 개혁의 나라, 한국’이라는 이미지가 우리의 발언권을 크게 확보해 주었습니다. 문민 민주주의의 완결과 개혁은 우리가 쉬지 않고 추구해야 할 과제라는 점을 더욱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이러한 ‘문민과 개혁’을 바탕으로 우리는 보다 넓은 세계, 보다 밝은 미래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향유하고 있는 지리학적 조건은 저 넓은 태평양으로, 그리고 인류의 절반 이상이 살고 있는 유라시아 대륙으로 뻗어갈 수 있는 바로 그 중심점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계문명의 중심이 아시아·태평양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아시아·태평양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기회를 민족웅비의 기회로 포착해야 합니다. 우리가 통일을 이루고, 5 천년 문화민족으로 당당히 설 때, 세계는 한민족을 새삼스런 눈으로 우러러 볼 것입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그리고 국회의원 여러분 !

    그러나 민족웅비의 역사는 저절로 오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는 안으로 30 년의 적폐를 씻어내고 국제화·개방화·세계화를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은 말만으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부터가 시작입니다.

    국제화, 미래화는 결코 개혁과 따로 떨어진 별개의 것이 아닙니다. 개혁을 통해서만 우리는 보다 빨리 미래화, 세계화를 달성할 수 있습니다. 과거를 청산하는 개혁과 함께 미래를 향한 개혁, 국제화를 위한 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해나가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정치권이 국제화, 미래화를 선도해야 합니다. 이제 정치도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생산적인 것이 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언제까지 국력을 소진시키는 대결과, 앞으로 나아가는 발목을 잡는 식의 내부 갈등만을 거듭할 수 없습니다. 조그마한 데 집착하는 소모적인 정쟁과 우물 안 개구리식의 시시비비를 지양해야 합니다. 다가올 미래와 넓은 세계를 내다보는 안목으로 정치를 해야 합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려서 오늘의 정치는 국가경쟁력을 밑받침하지도, 따라가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누가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있는지, 누가 더 공동의 선을 위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지, 누가 더 창조적이고 생산적인지를 놓고 여야가 경쟁해야 합니다. 이제 국가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 공리공론은 걷어치워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모든 영역에서 높은 비용, 낮은 능률로 허덕이고 있습니다. 특히 경제가 그렇습니다. 생산의 3 대 요소라 할 지대·금리·임금 상승률이 경쟁 상대국에 비해 너무 높습니다. 규제나 절차가 아직도 너무 복잡합니다. 과학기술을 너무 소홀히 하고 있습니다. 행정능률과 체계가 구시대적입니다. 새로운 변화에는 새로운 대응이 필요합니다. 전통적인 처방으로는 대응할 수 없습니다. 적응능력을 새롭게 개발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제까지와 같은 방식으로는 경제의 국제화·개방화·세계화를 이루어 낼 수 없습니다. 낮은 비용으로 높은 능률을 가져올 수 있는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이 강구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눈을 세계로 돌려야 합니다. 19 세기 말엽의 우리 선조들처럼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더이상 배타적이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만의 논리에 사로잡혀 있어서도 안됩니다. 모든 국가들이 21 세기를 향해서 뛰고 있습니다. 늦으면 낙오자가 됩니다.

    눈앞의 것만 보지 말고, 더 멀리 보아야 합니다. 더 빨리 뛰어야 합니다.

    저는 돌이킬 수 없는 시대적 요청인 개혁과 국제화·개방화·세계화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나라를 반드시 선진국에 진입시키고야 말겠습니다. 저는 그것을 이번 여행 동안 거듭거듭 다짐했습니다.

    지금은 하늘이 내려 주신 마지막 기회입니다. 이 기회를 놓치면 우리는 영영 낙오할 것입니다.

    그것이 제가 이번 여행에서 느낀 감회요, 결의입니다. 우리 모두 힘을 합해 세계로, 미래로 나아갑시다. 감사합니다.

    (1993. 11. 29. APEC 지도자 회의 및 미국 공식방문 귀국보고. 국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