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해리만 민주주의상을 수상하게 된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나는 세계 여러 곳에서 민주주의 발전을 위하여 헌신하고 있는 많은 분들 가운데서, 유달리 내가 수상하게 된 데 대하여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나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한국 국민의 피와 땀의 결정이라는 점에서, 한국 국민과 더불어, 그리고 한국 국민을 대표하여 이 상을 받고자 합니다. 지난 40 여 년간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수많은 동지들에 대하여 경건히 머리 숙입니다.
또한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과 인권 신장을 위하여 헌신해 온 나의 사랑하는 모든 동지들과 이 기쁨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나는 한국에 대한 일본의 식민통치가 더욱 강화되고 있었던 1928 년, 태평양 연안의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청소년기를 일본의 식민지 지배 체제 아래서 성장했습니다. 미국에서 이미 실현하고 있었던 민주주의에 대해 막연한 동경이 싹튼 것도 이 무렵의 일이었습니다.
1945 년 한민족이 일제의 식민통치로부터 벗어났을 때, 한국 국민은 우리도 미국처럼 민주주의를 구현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습니다. 그 때 우리는 이런 노래를 불렀습니다.
“어둡고 괴로워라 밤도 길더니 삼천리 이 강산에 먼동이 튼다 동무여 자리 차고 일어나거라 산 넘어 바다 건너 태평양 건너 아아 자유의, 자유의 종이 울린다.”
태평양 저편, 미국은 자유와 민주의 나라로 우리들에게 깊게 새겨졌던 것입니다.
한민족의 시련은 해방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남북으로 국토는 갈라지고 민족은 분열되었습니다. 한국전쟁의 참화를 겪어야 했습니다.
한국전쟁이 끝날 무렵 나는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꿈을 안고 정치에 투신했습니다. 그로부터 40 년 가까운 세월 동안, 나는 언제나 국민의 편에 서서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 왔습니다.
나는 그 과정에서 테러로 목숨을 잃을 뻔하기도 했습니다. 독재 권력에 의해 국민이 뽑아준 국회의원직을 박탈당하기도 했습니다. 3 년간에 걸친 가택연금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생명을 건 23 일간에 걸친 단식투쟁도 했습니다. 민주주의를 향한 긴 투쟁의 과정에서 나와 한국 국민은 자유와 정의를 사랑하는 세계의 벗들로부터 많은 지원과 격려를 받았습니다.
이제 한국 국민은 정통성과 도덕성을 갖춘 문민정부를 세웠습니다.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정부가 마침내 수립된 것입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30 여년에 걸친 갈망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권위주의적 군사문화를 청산하고 있습니다. 쌓이고 쌓인 부정부패를 추방하고 있습니다. 국민의 자유와 인권이 신장되고, 사회의 자율과 다양성이 존중되고 있습니다. 사회정의의 구현을 향한 개혁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이룩한 경제성장을 기초로 자신있게 세계로, 미래로 나아가고자 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신한국’을 건설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그러나 아직도 나와 한국 국민에게는 이루지 못한 꿈이 있습니다. 갈라진 국토와 민족을 하나로 합치는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한국 민주주의의 영역을 한반도 전체로 확대하는 일입니다.
세계사는 우리 민족의 화해와 통일에 유리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나와 우리 국민 또한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진실로, 북한과 화해 협력하고, 함께 번영하며, 함께 민주주의의 가치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북한의 핵개발 의혹이, 나와 우리 국민의 꿈과 희망, 그리고 한반도 역사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북한은 동북아시아와 세계의 평화를 위하여, 그리고 7 천만 민족의 생존을 위하여 핵개발 의혹을 조속히 해소해야만 합니다. 북한이 진실로 민주주의와 인권과 자유를 향한 7 천만 동포의 꿈과 희망을 저버리지 않기를 우리는 소망하고 있습니다.
나와 우리 국민은 아직도 동토로 남아 있는 북한에서 민주주의의 꽃이 활짝 필 수 있도록 인내심을 가지고 노력할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도 나와 한국 국민의 희망과 꿈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도하고 또 협력해 주실 것을 바라마지 않습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통일된 한민족이 세계의 평화와 인류의 번영에 창조적으로 기여하는 것이 나와 우리 국민의 마지막 꿈입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이 세계에서 희망에 차 있는 가장 역동적인 지역입니다. 새로운 문명의 중심 축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것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바로 이번 APEC 지도자 회의의 성공적 개최는 새로운 아시아·태평양 시대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한국은 이번 회의에서 나름대로 역할을 했다고 자부합니다만, 머지않아 통일될 한국은 미국·일본·중국과 더불어 아시아·태평양 시대에 중추적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민족에게는 5 천년 동안 면면히 이어 온 높은 문화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 동안 세계와 인류로부터 받은 혜택을 더 큰 빛으로 세계와 인류에게 되돌려 주고자 합니다. 나와 우리 국민이 추진하고 있는 변화와 개혁 역시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인류의 진보에 기여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세계의 건설과 우리가 함께 열어 나가고자 하는 아시아·태평양 시대의 개막 역시 민주주의 가치의 공유와 그 확산으로부터 시작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가치는 새로운 세계의 출발점이자 그 목표입니다. 한·미 양국은 이미 민주주의의 가치를 공유한 동맹입니다. 민주주의를 토대로 한 한국과 미국의 튼튼한 협력관계는 새로운 세계 공동체의 창조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확신합니다.
내가 어렸을 때, 바닷가에서 태평양을 바라보며 꿈꾸어 왔던 것도 민주주의,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민주주의를 통해서 더 넓은 세계로, 더 밝은 미래로 나아가고자 하는 한국 국민의 꿈은 곧 세계인의 꿈이기도 합니다.
마침 오늘은 내가 존경하는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서거 30 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바로 오늘 해리만 민주주의상을 받는 것은 나에게 각별한 뜻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오늘 아침 알링턴 국립묘지에 들러 한국전쟁에서 산화한 무명용사 묘지를 참배하고, 케네디 대통령 묘소에도 들러 깊은 경의를 표했습니다. 나는 케네디 대통령이 그의 취임사에서 우방 국민들에게 말한 구절을 여러분과 함께 음미해 보고자 합니다.
“미국이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묻지 말고 우리가 다함께 힘을 합쳐 인간의 자유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묻도록 합시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의 꿈, 인간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함께 손잡고 나아갑시다.
감사합니다.
(1993. 11. 22. NDI‘해리만 민주주의 상’수상 연설. 워싱턴 힐튼호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