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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때 이궁(離宮)을 세운곳


     청와대는 우리나라 국가운영의 최고, 최종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수많은 정치인들의 최종적인 지향점이기도 한 곳입니다. 1939년 일제의 조선총독이 이곳에서 조선을 지배했으며, 해방 이후에는 대한민국 경영의 핵이었습니다.

     청와대 일대는 예로부터 풍수지리상으로 길지중의 길지에 속한다고 알려져 왔습니다. 북으로는 북악산을 주산으로 좌청룡인 낙산(駱山), 우백호인 인왕산(仁旺山), 안산(案山)인 남산이 있으며, 명당수인 청계천이 북북서에서 통과해 동쪽으로 흘러가고 객수(客水)인 한강이 동에서 서로 흘러가는 매우 길한 배산임수(背山臨水)의 형상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청와대가 자리잡은 곳에 관해서는 이견도 많습니다. 전 서울대 교수인 崔昌祚씨는‘왜인들이 백두산에서 내려와 북악으로 이어지는 기를 끊기 위해 근정전 자리에 그들 총독의 잠자리를 만들었다.’며 청와대를 허물 것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청와대가 자리잡은 세종로 1번지 일대가 역사에 처음 등장한 것은 고려 숙종때인 1104년경, 고려의 이궁(離宮)이 이곳에 들어서면서부터입니다. 고려는 풍수지리설에 따라 개경과 함께 서경(평양), 동경(경주)의 세곳을 삼경으로 삼았는데 숙종때 동경대신 이곳에 이궁을 두고 남경으로 삼았습니다. 숙종 이후 예종, 인종,계속 번성했던 이곳은 충렬왕의 삼경(三京)제 폐지로 한동안 쇠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청와대 자리가 다시 역사에 등장한 것은, 조선의 건국과 함께 수도를 옮기자는 논의가 본격화되면서부터였습니다. 태조 이성계는 재위 3년째인 1394년 새 수도건설을 위한 [신도궁궐조성도감 (新都宮闕造成都監)]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관리들을 보내 궁궐터를 물색하게 했는데 고려 숙종때의 이궁터는 협소해서 새로 궁궐을 짓기가 어렵기 때문에 좀더 남쪽으로 이동해서 궁궐을 지어야 한다고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즉 오늘날의 청와대 터에서 좀더 내려간 평지에 왕궁을 짓기로 한 것입니다. 태조는 그해 12월 정도전으로 하여금 궁궐짓는 일을 시작하도록 했습니다. 태조 4년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여 9월에 궁을 완성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경복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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