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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마음, 측근들의 마음


대통령의 마음, 측근들의 마음


    박 대통령은 나를 신민당 총재에서 밀어냄으로써 청와대 회담의 약속에서 해방되었다고 판단하는 듯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회담 내용을 공개하지 않기로 한 약속을 지킴으로써 개헌 약속이 박 대통령을 속박하고 있다는 것을 전하고자 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대통령은 나와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 개헌을 할 때까지 나는 싸울 것이다. 내 마음의 다짐이었다.

    10.26 후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묻어두었던 청와대 회담의 비밀을 털어놓으라고 했다. 그만큼 오해를 사고 정치적 손실을 겪었으니 이제는 밝혀야 한다고 했다. 1980년 3월 관훈 클럽 토론에서도 기자들은 이것을 공개하라고 했지만 나는 회담의 당사자 한 분이 이제는 이 세상에 없다 해도 약속은 지켜야 한다고 비밀의 내용을 말하지 않았다.

    그랬는데 다른 곳에서 비밀의 내용이 흘러 나왔다. 박 대통령은 극소수 측근들에게 회담 내용을 알려 주었던 모양이다. 1983년인가 어느 기자가 그때 회담에서 개헌 약속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했다. 대통령의 측근이던 사람들이 그 내용을 알리기 시작했다면 나도 더 이상 비밀로 묻어 둘 이유가 없었다.그리고 그제서야 대통령이 왜 약속을 뒤집었는지 내 나름으로 해석을 해 봤다. 아마 나와의 회담 후 대통령은 측근에게 유신은 1기로 끝낼 생각이라는 의사를 비치고 그것이 나와의 합의라는 얘기를 한 것 같다.

    그런데 장기 집권은 집권 당사자보다도 집권자의 그늘에서 온갖 혜택을 독점하는 사람들 쪽의 집념이 더 강하다. 이들은 대통령의 마음을 바꿔 놓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필사적인 공작을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 공작은 별로 어렵지 않았을지 모른다. 독재 체제하의 대통령은 측근들을 통해 세상을 보게 되는데 측근들은 세상 일을 조금 다르게 혹은 조작해 알리는 데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대통령에게 나를 모해(謀害)하고 야당을 깎아내리고 박 대통령 말고는 이 나라를 이끌어 갈 사람이 없다고 대통령의 자만에 찬 애국심을 부추기는 것은 아마도 그리 어렵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리고 측근들의 공작은 대통령으로 하여금 약속은 대통령 자신이 깨는 것이 아니라 내가 깨도록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게 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