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뭐라든 20년 야당사에 있어서나 나아가서 이 나라 정치사에 있어서 커다란 발전을 수록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서구적인 민주주의를 토착화시키는 과정에서 볼 때 9.29 대회는 무한한 가능성의 묘목을 심었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다. 40대 기수론을 제창했고 대통령 후보 지명 경쟁의 제1주자였던 내가 마지막에 가서 제2주자였던 김대중 의원에게 예상 밖의 표수로써 패배했지만 결과적으로 내가 제창했던 40대 기수론이 채택되었고, 그 과정에서 그 정도나마 선의의 경쟁이 이루어졌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하고 담담한 심경에 안주할 수가 있다. 이와 같은 나의 가치관은 그날 2차 투표 결과 김대중 의원의 승리로 역전되던 그 쓰라린 순간부터 정립되었었다.(제1차 투표 결과는 아래와 같았다. 총투표 885 중 김영삼 421, 김대중 382, 백지 78, 기타 4로 김영삼은 과반수에 22표가 모자라 지명 획득에 실패하고 2차 투표에 들어갔다. 제2차 투표 결과는 총투표 884 중 김대중 458, 김영삼 410, 기타 16으로 김대중이 과반수에서 12표를 넘어 승리했다.)
그렇기 때문에 김후보의 후보 지명 수락 연설에 뒤이어 국민과 당에 약속한 대로 김후보를 지지하며 김후보 지원을 위해 내가 갈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겠다고 자신있게 외칠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그 자리에서 "김후보의 승리는 바로 나의 승리"라고 말한 것은 단순한 자기 미화를 위한 표현이 아니라 뚜렷한 소신이 섰기 때문이었다. 9.29 대회를 가리켜 '한국 근세 정당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아름답다고 할 수 있는 대회'라고 격찬한 어느 평론가의 칼럼이 '신민당도 승리했고, 김대중 씨도 승리했고, 김영삼 씨도 승리했고, 유진산 당수도 승리했다'고 논평한 것을 읽고 나의 그러한 생각은 한층 더 굳어졌다. 국외자의 눈에 그 정도로 비친 9.29 대회였다면 그 대회의 주역의 한 사람이었던 나로서는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무튼 나는 제1 주자가 제2 주자에게 바톤을 넘긴 심경으로 김후보가 정권교체라는 영광의 고지에 골인할 때까지 함께 뛸 각오가 되어 있다. 김후보의 길은 바로 내가 가려던 길이며 그것은 내가 테이프를 끊어놓은 길이며 그 목표 또한 하나인 것이다. 나는 작년 11월 8일 발표한 후보 출마 선언 성명에서 나의 도전을 가리켜 '위장 민주주의에 대한 진정한 민주주의의 그것이며, 관권에 대한 민권의 그것이며, 가진 자에 대한 잃은 자의 그것'이라고 규정지은 바 있다. 이러한 나의 도전에 대해 김대중 의원은 동조자의 한 사람이었다. 특히 '선의의 경쟁'이라는 당내 민주주의와 혁신을 위해서는 좋은 상대자였던 것이다. 다만 유감스러운 것은 일부 인사들의 구태의연한 비신사적 작풍이 날개를 거두지 않았던 점이다.
어떤 분들은 국민에게 약속했고, 어떤 분은 인격을 걸고 약속한 내용을 헌신짝처럼 저버렸던 것이다. 이 시점에서 나는 부질없는 과거를 따지고 싶지는 않지만 모름지기 정치인은 그러한 배신과 배리(背理)의 생리와는 이제 인연을 끊어야 할 줄 믿는다.(후보 지명대회 전에 김영삼과 이철승은 유진산 당수 앞에서 인격을 걸고 서약했었다. 그 내용은 '신민당 대통령 후보 경합에 있어 나는 후보 제1 추천권을 유당수에게 맡기고 당수가 두 사람 중 한 사람을 추천했을 경우에는 나는 나를 지지하는 당원들과 함께 일체의 난동이나 반란을 하지 않고 당수의 추천에 승복하여 지명대회나 대통령선거에서 성의를 다해 협조할 것을 인격과 신의를 걸고 당과 국민에게 서약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철승 지지자들은 제1차 투표에서는 백지투표로, 그리고 2차 투표에서는 김대중의 '이철승 체제 구축에 협력한다'는 각서를 받고 김대중을 지지했다. 나는 일시적으로 그런 권모술수에 막중한 피해를 보았지만 이제는 소리(小利)에 눈이 어두워 잔재주가 통하는 정치 작풍은 발붙이지 못할 것이다. 또 발붙이지 못하도록 되어야 할 것이다. 신의와 성실의 대도를 걷는 정치인들이 지배하는 정당이라야 국민이 믿고 정권을 맡길 것이다.
나는 나의 정치 지표로서 다음 세 가지를 내세웠었다.
1. 억압과 공포가 없는 정치, 2. 지역, 계층 간에 불균형이 없는 경제, 3. 너와 나 사이에 불신이 없는 사회, 불신이 없는 사회야말로 오늘날 우리 사회에 시급히 요구되는 심각한 문제이다.
정치는 인간관계의 확대재생산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나하나의 인간관계가 확산돼서 결국에는 국민 대다수의 지지권을 형성하는 것이며, 그것이 실현되었을 때 한 정당이 국가의 대권을 담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인간관계는 믿음에 바탕을 두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적어도 정권을 맡아보겠다는 공당의 지도자들 사이에 신의의 관계가 유지되지 않아서야 어떻게 그 정당과 국민의 사이에 믿음의 관계가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이제는 이러한 불명예스러운 일들은 과거라는 시류에 흘려보내고 모두들 아름다운 미래를 창조하는 데 앞장섰으면 한다. 일찍이 처칠은 "과거에 집착하는 사람은 미래를 잃는다"고 했다. 우리는 9.29의 승리에 도취될 것이 아니라 71년의 승리라는 미래의 목표를 향해 전진해야 하는 것이다. 지난 지명대회에서 보여준 우리의 잠재력으로 얻은 국민으로부터의 믿음의 영역을 연쇄반응시켜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실현시킴으로써 새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해야 할 것이다.
기성 관념에 사로잡힌 인사들은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한다.
1. 과연 정권 교체가 가능할까? 2. 신민당이 과연 정권을 담당할 능력이 있는가?
이러한 물음에 부정적인 대답을 하는 사람은 패배주의자라고 한마디로 규정짓는다. 나는 가능하다는 굳은 소신을 갖는다. 4.19 학생의거를 감히 누가 가능하다고 보았던가? 신민당의 생리 속에서 40대 후보가 가능하다고 본 사람이 과연 몇 사람이나 되었던가? 가능성을 향해 꾸준히 도전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길이 열리는 법이다. 정권교체의 시기와 여건은 성숙되었으며 국민의 정치의식도 항상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국민의 눈이 있고 국제적 여론이 지켜보는 한 그렇게까지 비판하고 싶지 않다. 아무리 부정선거를 하고 언론을 탄압하여 국민의 판단을 흐리게 한다 해도 거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역사의 교훈을 상기한다.
마지막으로 집권당에 바라고 싶다기보다 호소하고 싶은 것이 있다. 이번 선거전이야말로 국민이 바라는 대로 선의의 경쟁을 해달라는 것이다. 여기에 지난 68년 미국의 민주 공화 양당 지명대회가 끝난 후 당시의 집권자이던 존슨 대통령이 취한 너그러운 행동을 적어둔다. 두 대회가 끝나자 존슨 대통령은 텍사스 목장으로 반대당인 공화당의 닉슨 - 애그뉴 팀을 초청하여 축하해주고, 월남정책에 관한 최고의 기밀까지 브리핑해주면서 월남 문제를 너무 들추지 말도록 부탁했다. 닉슨도 지나친 월남전 비판을 삼감으로써 신의를 지켰다.
1970년 10월 7일 조선일보